소재에 따라 발전해온
의자 디자인의 역사
의자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디자이너의 이름부터 떠올립니다.
토넷, 브로이어, 임스, 팬톤...
그런데 이 계보를 다르게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자리에 재료를 놓아 보는 것이지요.
19세기의 목수는 곡선 하나를 마음대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형태를 가로막은 건 상상력이 아니라
그가 쥔 재료였습니다.
우리 주변 의자들을 향한 7개 질문을 따라
의자 소재와 디자인 역사를 따라가봅니다.
대개 디자이너의 이름부터 떠올립니다.
토넷, 브로이어, 임스, 팬톤...
그런데 이 계보를 다르게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자리에 재료를 놓아 보는 것이지요.
19세기의 목수는 곡선 하나를 마음대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형태를 가로막은 건 상상력이 아니라
그가 쥔 재료였습니다.
우리 주변 의자들을 향한 7개 질문을 따라
의자 소재와 디자인 역사를 따라가봅니다.
CONTENTS | 시팅랩의 의자 조형 탐구
① 재료는 의자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곡목부터 메쉬까지, 다섯 재료가 의자의 선과 곡면, 구조를 바꾼 순간을 따라갑니다.
② 새 형태는 어떤 제약을 데려왔을까?
금지가 하나 풀릴 때마다 새로운 조건이 하나씩 생겨난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③ 이제 설계는 무엇을 묻기 시작했을까?
‘무엇을 더 만들 수 있는가’에서 ‘무엇을 되돌릴 수 있는가’로 옮겨간 질문을 살펴봅니다.
"의자 디자인의 혁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새로운 재료였습니다."
지금 앉아 계신 의자를 한번 내려다보세요. 등판이 살짝 휘어 있고, 다리가 넷이거나 다섯이고, 어딘가에는 플라스틱, 어딘가에는 패브릭이 붙어 있겠지요. 우리는 이 형태를 너무 오래 봐서, 이게 누군가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뒤로 물러나 보면 일정한 규칙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뒷다리 없는 의자는 1920년대 후반 3년 사이에 세 명의 디자이너가 잇따라 내놓았고, 몸을 감싸는 곡면 셸은 1940년대에 몰려 나왔으며, 뒤가 비쳐 보이는 메쉬 사무용 의자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퍼졌습니다. 여러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형태에 도달한 셈이지요. 이런 상황을 우연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그럴듯한 설명은 그 형태를 버텨줄 재료가 마침 그때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형태의 역사는 예술적 자유가 넓어져 왔다기보다 디자인의 제약이 갱신되어 온 과정에 가깝습니다. 곡목, 강관(쇠파이프), 성형합판, 유리 섬유와 플라스틱, 메쉬, 기후 위기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순환의 원칙까지, 지금부터 우리는 그 교체의 순간들을 차례로 지나갈 예정입니다.
ㅣ카페 의자는 왜 다 비슷하게 생겼을까?
“토넷 No. 14의 가볍고 저렴한 곡목 구조가 대량생산되며 카페 의자의 표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파리, 상하이, 연남동 어디에서든, 우리는 카페에서 비슷한 의자를 만납니다. 둥근 원호를 그리는 등판, 가느다란 다리, 놀랄 만큼 가벼운 무게. 오늘날 카페 체어의 전형이 된 모델은 1859년에 나온 미하엘 토넷의 No. 14입니다. 증기로 나무를 구부려 만든 의자로, 근대적 대량생산 의자의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그렇다면 왜 그전까지는 이런 의자가 없었을까요?
나무는 곧게 자라고 결을 따라 쪼개집니다. 구부리면 바깥쪽 섬유는 늘어나고 안쪽은 눌리는데, 목재는 압축에는 제법 견디지만 늘리는 힘에는 약하지요. 그래서 힘을 주는 순간 바깥쪽부터 찢어집니다. 당시 공방에서 곡선을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은 두꺼운 나무 덩어리를 깎아 파내거나, 얇은 조각을 여러 개 이어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앞의 방법은 재료의 대부분을 톱밥으로 버리고, 뒤의 방법은 이음매마다 약점을 만듭니다. 그래서 곡선은 비쌌습니다. 로코코 시대 앤티크 가구의 우아하게 휜 다리는 그것을 깎아낸 장인의 시간과, 그 시간을 살 수 있었던 주문자의 재산을 동시에 증명했습니다. 형태가 곧 가격표였습니다.
여기서 당시 유럽의 사정이 끼어듭니다. 19세기, 빈을 비롯한 도시에는 커피하우스가 빠르게 늘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사업 이야기를 하며 몇 시간씩 앉아 있는 ‘도시 생활’이 인류사에 처음 등장한 것이지요. 이 공간들은 값싸고 가볍고 잘 부서지지 않는 의자를 수백 개씩 필요로 했습니다. 귀족의 응접실을 위한 값비싼 곡선은 여기에 맞지 않았습니다. 시장은 새로운 형태를 요구했지만, 재료와 공정은 아직 그 요구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토넷 No.14의 구조와 36개 들이 박스
미하엘 토넷은 ‘가구 디자이너’라는 직함이 낯설던 시기에 살았습니다. 그가 하던 일은 목수에 가까웠지만, 가구 역사를 영원히 바꿔놓을 의자를 발명했지요. 토넷은 너도밤나무 봉을 증기로 쪄서 물러지게 한 다음 압력을 가해 구부리고, 굽힘의 바깥쪽에는 금속 띠를 덧대 나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인장을 금속이 대신 받게 했습니다. 찢어지는 원인이 바깥쪽 인장이었으니, 그 힘만 다른 재료에 넘기면 나무는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방법을 완성하는 데 그는 수십 년을 썼습니다.
미하엘 토넷은 ‘가구 디자이너’라는 직함이 낯설던 시기에 살았습니다. 그가 하던 일은 목수에 가까웠지만, 가구 역사를 영원히 바꿔놓을 의자를 발명했지요. 토넷은 너도밤나무 봉을 증기로 쪄서 물러지게 한 다음 압력을 가해 구부리고, 굽힘의 바깥쪽에는 금속 띠를 덧대 나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인장을 금속이 대신 받게 했습니다. 찢어지는 원인이 바깥쪽 인장이었으니, 그 힘만 다른 재료에 넘기면 나무는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 방법을 완성하는 데 그는 수십 년을 썼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건 곡선 다음에 벌어진 일입니다. No. 14는 목재 여섯 조각과 나사 열 개, 너트 두 개로 이루어집니다. 부품이 적으니 숙련공이 아니어도 조립할 수 있고, 무엇보다 분해된 상태로 배에 실을 수 있었습니다. 1세제곱미터 상자 하나에 분해된 의자 36개. 접착제 대신 나사로 조립하는 방식은 습도 변화가 큰 장거리 운송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했고, 도착지에서 간단히 조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케아가 생기기 90년 전의 플랫팩이지요. 운송비가 내려가자 판매 항로가 열렸습니다. 토넷 No.14는 1859년부터 1930년까지 약 5천만 개가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곡선을 만드는 방식이 부품 수를 줄였고, 줄어든 부품이 물류를 바꿨으며, 바뀐 물류가 가격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두껍고 무거운 목재 덩어리가 가느다란 선으로 바뀌면서 의자의 형태는 부피보다 윤곽으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토넷이 고안한 것은 아직 ‘평면 위의 곡선’이었습니다. 종이를 말아 원통을 만드는 것까진 해결했지만, 구겨지지 않게 그릇 모양으로 만드는 일까지는 아직 90년쯤 남아 있었습니다.
Note on the Chair 01
토넷 No.14, 1859년 : 곡목과 보편적 의자의 탄생
목재 여섯 조각과 나사 열 개, 너트 두 개. 이 부품 목록은 지금 봐도 극단적입니다. 요즘 사무용 의자 한 대의 부품이 100개를 훌쩍 넘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제작 공정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너도밤나무 살을 100℃까지 가열해 물러지게 한 뒤 주철 몰드에 밀어 넣고, 70℃ 안팎에서 스무 시간을 말립니다.숙련 장인 없이 시간과 설비만으로 같은 물건이 나온다는 것, 이것이 대량생산의 조건이었습니다. 1876년경 토넷 공장에는 노동자 4,500명과 증기기관 10대, 말 280마리가 있었고 하루에 가구 2,000점을 만들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00년경에는 26개 공장의 하루 생산량이 1만 5천 점에 달했습니다.
1869년 특허가 만료되자 유럽 전역에서 복제품이 쏟아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카페에서 만나는 '그 의자' 대부분은 토넷이 만든 게 아니라 그 이후 160년간의 후손들입니다. 그래서 이 의자는 특이한 방식으로 승리했습니다. 브랜드가 아니라 형태 자체가 표준이 된 것이지요.
Victoria and Albert Museum 컬렉션 해설, Philadelphia Museum of Art 소장 정보, German Design Council 「Design Icons: Thonet Chair No. 14」
ㅣ뒷다리 없는 의자는 어떻게 안 넘어질까?
“캔틸레버 의자는 강관 프레임이 하중을 앞쪽 지지부로 전달해 뒷다리 없이도 몸을 받칩니다.”
뒷다리 없이, 옆에서 보면 알파벳 C를 눕힌 것 같은 의자, 한 번쯤 앉아보셨을 거예요. 카페나 회의실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앉으면 몸무게에 따라 미세하게 출렁이지요. 물리적으로는 다소 불안해 보입니다. 등을 기대면 체중이 뒤로 쏠리는데 받쳐줄 뒷다리가 없으니, 앞쪽에서 이어진 하나의 프레임이 그 힘을 감당합니다. 이 구조를 ‘캔틸레버’라고 부릅니다. 지금 캔틸레버 의자에 앉아 계신다면 등판에 몸무게를 조금씩 실어보세요. 프레임의 탄성이 몸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되받아치는 감각이 느껴질 겁니다. 가볍고 탄성 있는 캔틸레버 의자를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바로 ‘강관’의 등장이었습니다.
(좌측부터) 마르트 스탐 체어, 미스 반 데어 로에의 MR 체어, 브로이어 캔틸레버 체어
최초의 캔틸레버 의자들을 살펴 보면, 시기가 몰려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마르트 스탐이 1926년, 미스 반 데어 로에가 1927년, 마르셀 브로이어가 1928년에 캔틸레버 의자를 내놓았습니다. 불과 3년 사이의 일입니다. 답은 파이프, 정확히는 이음매 없이 뽑아낸 강관(강철로 만든 속이 빈 관, 즉 쇠 파이프)에 있습니다. 같은 무게라면 속이 빈 관은 속이 찬 봉보다 굽힘에 효율적으로 저항할 수 있습니다. 재료가 중심에서 멀리 배치될수록 굽힘에 대한 저항이 커지는데, 관은 정확히 그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부리거나 도금하기 쉽고 표면도 매끈해 가구에 적용하기에도 적합했습니다. 캔틸레버 구조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재료가 마침 그 시기에 널리 보급된 것입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요?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항공기와 자전거를 위해 세워진 강관 생산 설비가 남았습니다. 동시에 유럽은 심각한 주택난을 겪고 있었고, 작은 집에 들어갈 가볍고 값싼 가구가 필요했습니다. 바우하우스는 “장식을 버리고 산업 재료로 만들자”는 구호를 바로 그 시점에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조건들이 만나는 자리에 자전거 한 대가 있습니다. 브로이어는 자신이 타던 아들러 자전거를 오랫동안 형태가 변하지 않은 완벽한 산업 생산품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강철관을 마카로니처럼 구부려 핸들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관으로 탄력 있고 투명한 의자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마침 만네스만이 이음매 없는 강관을 상용화한 시점이었습니다. 자전거 핸들에서 의자가 나온 것입니다.
최초의 캔틸레버 의자들을 살펴 보면, 시기가 몰려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마르트 스탐이 1926년, 미스 반 데어 로에가 1927년, 마르셀 브로이어가 1928년에 캔틸레버 의자를 내놓았습니다. 불과 3년 사이의 일입니다. 답은 파이프, 정확히는 이음매 없이 뽑아낸 강관(강철로 만든 속이 빈 관, 즉 쇠 파이프)에 있습니다. 같은 무게라면 속이 빈 관은 속이 찬 봉보다 굽힘에 효율적으로 저항할 수 있습니다. 재료가 중심에서 멀리 배치될수록 굽힘에 대한 저항이 커지는데, 관은 정확히 그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부리거나 도금하기 쉽고 표면도 매끈해 가구에 적용하기에도 적합했습니다. 캔틸레버 구조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재료가 마침 그 시기에 널리 보급된 것입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요?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항공기와 자전거를 위해 세워진 강관 생산 설비가 남았습니다. 동시에 유럽은 심각한 주택난을 겪고 있었고, 작은 집에 들어갈 가볍고 값싼 가구가 필요했습니다. 바우하우스는 “장식을 버리고 산업 재료로 만들자”는 구호를 바로 그 시점에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 조건들이 만나는 자리에 자전거 한 대가 있습니다. 브로이어는 자신이 타던 아들러 자전거를 오랫동안 형태가 변하지 않은 완벽한 산업 생산품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 강철관을 마카로니처럼 구부려 핸들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관으로 탄력 있고 투명한 의자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마침 만네스만이 이음매 없는 강관을 상용화한 시점이었습니다. 자전거 핸들에서 의자가 나온 것입니다.
캔틸레버는 처음부터 출렁이는 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스탐이 1926년 슈투트가르트의 한 만찬에서 청색 펜으로 그려 보인 초기 모델은 가스관과 엘보 조인트를 조합한 뻣뻣한 물건이었습니다. 그에게 캔틸레버는 강철의 탄성을 활용하는 구조라기보다 뒷다리를 없애겠다는 선언에 가까웠지요. 탄성을 형태의 언어로 삼은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관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 유연함을 확보했고, 브로이어의 B32는 몸무게에 따라 프레임이 미세하게 출렁이는 감각을 만들어냈습니다. 1단계는 강성이었고, 2단계가 탄성이었습니다. 새 재료가 도착했다고 그 가능성이 한꺼번에 발견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새로운 형태는 소유권 다툼도 불러와, 스탐의 특허권을 사들인 사업가가 제조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B32가 한동안 스탐의 이름으로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 의자의 디자인은 엄연히 달랐지요. 특히 ‘세스카’라고도 불리는 B32는 매끈한 강관과 목재, 라탄의 결합으로 지금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첨단 금속 소재와 거칠고 전통적인 자연 소재가 만드는 질감의 충돌’이 형태를 더 흥미롭게 만들 거라는 브로이어의 디자인 전략이었지요.
강관은 두꺼운 몸체를 지우고 의자 너머의 공간이 보이는 ‘투명한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토넷이 목재를 선으로 바꾸었다면, 강관은 그 선만으로 좌면을 공중에 띄운 것입니다.
ㅣ의자는 언제부터 몸에 맞게 휘기 시작했을까?
“1940년대 성형합판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체를 입체적으로 감싸는 곡면 의자가 등장했습니다.”
앉았을 때 등이 편한 의자와 불편한 의자의 차이는 등판이 한 방향으로만 휘었는지, 여러 방향으로 휘었는지에서 드러나기도 합니다. 사람의 등과 몸통 표면이 상하와 좌우 방향으로 복합적인 곡면을 이루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두 방향으로 동시에 휘어진 면을 복합곡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복합 곡면’을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평평한 판을 원통처럼 마는 것은 쉬워도 그릇처럼 만드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말이지요. 종이는 둥글게 말 수 있지만 구겨지지 않게 반구로 만들 수는 없지요. 평면이 복합곡면에 도달하려면 재료 자체가 늘어나거나 줄어들어야 합니다. 그 문제를 푼 재료가 바로 ‘성형합판’입니다. 성형합판의 등장과 함께, 인체를 감싸는 ‘셸’ 구조가 마침내 가능해졌지요.
알바르 알토의 파이미오 체어
합판 자체는 19세기부터 가구에 쓰이던 오래된 재료였습니다. 다만 대개 평평한 판이었고, 구부린다고 해도 한쪽 방향으로만 휘었습니다. 핀란드의 가구 디자이너 알바르 알토는 1930년대 초 파이미오 요양원 의자에서 우아한 우회를 시도했습니다. 얇은 적층 목재 루프에 커다란 합판 한 장을 걸고, 재료를 강제로 복합곡면으로 성형하는 대신 판이 하중을 받아 저절로 휘도록 한 것입니다. 알토가 나무를 고른 이유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금속의 차가움과 반사음이 결핵 환자가 몇 달씩 머무는 공간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등판은 호흡이 편하도록 뒤로 눕고, 공기가 통하도록 틈이 뚫려 있습니다. 환자의 편안함이 의자 각도를, 즉 목적과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 셈입니다.
합판 자체는 19세기부터 가구에 쓰이던 오래된 재료였습니다. 다만 대개 평평한 판이었고, 구부린다고 해도 한쪽 방향으로만 휘었습니다. 핀란드의 가구 디자이너 알바르 알토는 1930년대 초 파이미오 요양원 의자에서 우아한 우회를 시도했습니다. 얇은 적층 목재 루프에 커다란 합판 한 장을 걸고, 재료를 강제로 복합곡면으로 성형하는 대신 판이 하중을 받아 저절로 휘도록 한 것입니다. 알토가 나무를 고른 이유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금속의 차가움과 반사음이 결핵 환자가 몇 달씩 머무는 공간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등판은 호흡이 편하도록 뒤로 눕고, 공기가 통하도록 틈이 뚫려 있습니다. 환자의 편안함이 의자 각도를, 즉 목적과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 셈입니다.
성형합판 작업을 하고 있는 임스 부부
재료 자체를 복합곡면으로 성형하는 길을 연 것은 로스앤젤레스의 한 아파트였습니다. 또 다른 의자 디자인의 거장,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의 집이었지요. 임스 부부는 저녁마다 직접 만든 ‘카잠(Kazam!) 머신’을 돌렸습니다. 접착제를 바른 얇은 베니어 층을 몰드 위에 올리고, 자전거 펌프로 고무 풍선을 부풀려 판을 몰드 쪽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었습니다. 결과는 들쭉날쭉했고, 만들어진 판은 톱과 사포로 일일이 다듬어야 했습니다. 이 실험을 산업의 언어로 번역한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미 해군은 가볍고 겹쳐 쌓을 수 있으며 사람 다리의 곡선을 받쳐줄 부목을 필요로 했습니다. 요구 조건 자체가 복합곡면 성형 문제였던 셈입니다. 임스 부부는 종전까지 15만 개가 넘는 합판 부목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합판 시트가 성형되는 순간 복합곡면을 함께 부여하는 공정을 완성했습니다. 이들이 ‘임스 프로세스’라고 부르고 특허까지 받은 기술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이 기술은 갈 곳을 찾았습니다. 미국은 전후 주택 붐 한가운데였고, 새 집으로 이사한 젊은 부부들에게는 값싸고 가볍고 근사한 가구가 필요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아예 '저가 가구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좋은 디자인을 대중에게 보급한다는 것이 미술관의 사업이던 시절이었지요. 1946년, 현대미술관에 임스 부부의 LCW가 놓였습니다. 좌판, 등판, U자형 다리 두 개까지 곡면 합판 네 조각이 유연한 합판 척추에 고정된 구조였습니다. 등판과 좌판은 프레임에 직접 붙이지 않고 고무 쇼크 마운트(Shockmount, 충격을 완화해주는 고무 연결부)로 연결하여, 각 부분이 따로 미세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사무용 의자에서 등판이 몸을 따라 살짝 기울어지는 감각, 즉 틸팅의 기원이 여기 있습니다. LCW 의자를 옆에서 보면 등판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 또한 시각적 연출이 아니라 쇼크 마운트 구조의 결과였습니다. 구조가 그대로 외형이 된 사례지요.
ㅣ하나로 이어진 의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플라스틱을 몰드에서 통째로 성형하면서 다리와 좌면, 등판이 이어진 의자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편의점 앞이나 식당 야외 테이블에 놓인 흰 플라스틱 의자를 떠올려보세요. 다리와 좌판, 등판 사이에 이음매가 없습니다. 나사도 용접 자국도 없이 통째로 한 덩어리입니다. 너무 흔해서 디자인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지만, 이 물건은 인류가 가장 많이 만든 가구입니다. 그리고 이 '한 덩어리'라는 성질은 성형합판의 시대까지도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한 판으로 성형하는 대신 한 번에 ‘부어내는’ 방식, 즉 사출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플라스틱이 의자에 처음 들어온 건 1950년입니다. 뉴욕의 저가 가구 공모전에 임스 부부가 내놓은 유리섬유 강화 폴리에스터 셸, 즉 ‘임스 플라스틱 체어’였죠. 가구 산업에서 사실상 최초의 양산 플라스틱 의자였습니다. 성형이 쉽고, 단단하고, 촉감이 나쁘지 않고, 산업적 생산에 적합했지만, 임스 플라스틱 체어는 여전히 다리를 따로 달아야 했습니다. 셸은 셸이고 구조는 구조였습니다.
덴마크의 디자이너 베르너 판톤은 그 경계를 지우고 싶어 했습니다. 다리 넷이 따로 달리지 않은, 하나의 재료로 이어진 유기적인 의자. 1957년 그가 남긴 스케치에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가 거의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문제는 재료였습니다. 여러 제조사가 만들 수 없거나 가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산을 거절했습니다. 1963년 판톤이 비트라의 빌리 펠바움을 만난 후 비로소 개발이 시작되었고, 1967년 냉간 프레스로 성형한 유리섬유 강화 폴리에스터 파일럿 시리즈 150개가 나왔습니다. 비트라는 이를 캔틸레버 구조로 한 조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전체 플라스틱 의자로 소개합니다.
1967년 파일럿은 유리섬유 강화 폴리에스터를 손으로 성형한 것이었습니다. 양산 과정에서는 경질 폴리우레탄 폼과 냉경화 폼, 열가소성 수지를 차례로 거쳐 지금의 폴리프로필렌에 닿았습니다. 오늘날 매장에서 보는 판톤 체어는 사출 제품이지만, 1967년의 모델은 사출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초기 공정은 손이 지나치게 많이 갔고, 어떤 버전은 오랫동안 앉기에 충분한 안정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형태가 요구하는 물성을 재료가 아직 갖추지 못했던 것이지요. 1957년의 형태가 자신에게 맞는 재료를 만나는 데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상상력이 재료를 앞질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드뭅니다. 판톤 체어에서는 다리와 좌면, 등판의 구분도 희미해졌습니다. 하나의 S자 선이 위치에 따라 기능을 바꾸며 이어집니다. 이 ‘이음매 없는 한 덩어리’는 이후 편의점 앞의 흰 플라스틱 의자, 이른바 모노블록을 통해 전혀 다른 형태로 대중화되었습니다. 그러나 1973년 오일쇼크로 플라스틱 가격이 오르자 디자이너들은 다시 나무와 라탄으로 돌아갔습니다. 재료가 형태를 여는 것처럼, 재료의 가격이 형태를 닫기도 합니다.
Note on the Chair 02
판톤 체어, 1967년 : 이음매 없는 의자
1956년경 첫 구상, 1960년 실물 크기 모형, 1967년 파일럿 150개, 1968년 양산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디어에서 양산까지 12년이 걸린 셈입니다. 판톤이 처음 시도한 단일 소재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합판이었습니다. 1966년 토넷과 함께 생산한 S 체어가 그것으로, 합판을 이용해 판톤 체어의 곡선을 먼저 시도해본 셈입니다. 현재의 폴리프로필렌 버전은 체중을 받으면 살짝 휘어집니다. 캔틸레버 구조와 인체를 닮은 곡면, 약간 유연한 재료가 만나 체중을 곡선 전체로 분산시킨다고 비트라는 설명합니다.
Vitra, Panton Chair
ㅣ메쉬 의자는 푹신하지도 않은데 왜 편할까?
“메쉬는 직물의 장력으로 체중을 분산하고 열과 습기를 배출해 몸을 쾌적하게 받칩니다.”
푹신함과 편안함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지금 앉아 계신 의자의 등판을 손가락으로 한번 눌러보세요. 쑥 들어갔다가 천천히 돌아온다면 폼(스폰지)이고, 팽팽하게 버티면서 손가락을 밀어낸다면 메쉬입니다. 두 방식은 몸을 받치는 원리가 아예 다릅니다. 두꺼운 폼은 하중을 받으면 눌리고, 커버와 함께 열과 습기를 가둡니다. 반면 메쉬는 쿠션의 부피가 아니라 팽팽하게 당겨진 직물의 힘으로 몸을 받칩니다. 장력을 가진 직물이 하중을 나눠 받는 이 구조를 ‘서스펜션 시팅’이라고 부릅니다.
1990년대 초까지 사무용 의자의 문법은 단순했습니다. 프레임을 만들고, 폼을 얹고, 그 위를 패브릭이나 가죽으로 덮었습니다. 앉는 사람이 만나는 건 언제나 커버였고, 의자의 구조는 그 아래 숨어 있었습니다. 1994년 등장한 에어론은 이 순서를 뒤집었습니다. 빌 스텀프와 돈 채드윅은 초기 프로토타입에서 폼과 커버를 걷어내고, 여러 방향으로 휘면서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직물을 개발했습니다. ‘펠리클’이라고 불린 메쉬 소재입니다. 당시 마케팅 부서는 커버 없는 의자를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을지 우려했다고 합니다. 소파도 침대도 자동차 시트도 모두 무언가로 덮여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메쉬가 바꾼 것은 통기성만이 아니었습니다. 의자의 형태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폼을 얹으려면 폼을 받칠 넓은 판이 필요하지만, 장력을 가진 직물은 테두리만 잡아주면 됩니다. 판이 사라지고 프레임만 남았습니다. 의자는 반투명해졌고, 골격 자체가 디자인 언어가 되었습니다. 강관이 의자를 선으로 바꾸었다면, 메쉬는 의자를 테두리와 장력으로 바꾼 것입니다. 에어론은 닷컴 붐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상징이 되었고, 버블 붕괴 뒤에는 파산 기업의 경매를 통해 중고 시장에 대거 풀렸습니다. 2016년 리마스터 버전은 등판과 좌판을 합쳐 여덟 개의 장력 존을 두었습니다. 몸을 띄워야 하는 구역은 팽팽하게, 하중이 집중되는 구역은 순응적으로 만들어 하나의 직물 안에 서로 다른 물성을 부여한 것입니다. 고가 플래그십의 실험으로 출발한 메쉬는 30년이 지나며 사무 환경의 기본에 가까워졌습니다. 다만 체중 대부분이 실리는 좌판까지 메쉬로 만드는 일은 등판을 메쉬로 만드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ㅣ의자의 기능은 어떻게 재료 속으로 사라졌을까?
"탄소섬유 복합재와 고성능 폴리머의 등장으로 소재의 탄성이 조절 장치를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에 등장한 에어론은 조절 중심의 인체공학 의자를 상징하는 모델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이 저마다 다르니 의자가 각자의 몸에 맞춰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크기를 A·B·C 세 가지로 나누고, 좌판 높이와 틸트, 팔걸이 등을 사용자가 맞추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좋은 의자란 정교하게 조절되는 의자였고, 그만큼 부품과 레버도 늘어났습니다. 인체공학이 발전할수록 사무의자는 점차 정교하게 조립된 기계의 모습을 띠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2010년 전후, 조절 장치를 줄이려는 경향이 의자 업계에 등장했습니다. 기능이 복잡해질수록, 소비자가 사용법을 전부 이해하고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 깨닫기 시작했거든요. 레버 대신 신소재들이 인체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몸에 맞춰 의자를 조절하는 대신, 앉는 순간 의자가 스스로 반응하게 하려는 것이었지요.
1994년에 등장한 에어론은 조절 중심의 인체공학 의자를 상징하는 모델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이 저마다 다르니 의자가 각자의 몸에 맞춰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크기를 A·B·C 세 가지로 나누고, 좌판 높이와 틸트, 팔걸이 등을 사용자가 맞추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좋은 의자란 정교하게 조절되는 의자였고, 그만큼 부품과 레버도 늘어났습니다. 인체공학이 발전할수록 사무의자는 점차 정교하게 조립된 기계의 모습을 띠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2010년 전후, 조절 장치를 줄이려는 경향이 의자 업계에 등장했습니다. 기능이 복잡해질수록, 소비자가 사용법을 전부 이해하고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 깨닫기 시작했거든요. 레버 대신 신소재들이 인체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몸에 맞춰 의자를 조절하는 대신, 앉는 순간 의자가 스스로 반응하게 하려는 것이었지요.
2018년 스틸케이스가 내놓은 실큐는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의자입니다. 개발을 이끈 제임스 러드윅은 수많은 부품이 하던 일을 하나로 이어진 프레임에 맡기고자 했습니다. 그 형태를 처음 가능하게 한 재료가 탄소섬유 복합재였습니다. 탄소섬유는 무게에 비해 강도가 높고, 섬유를 놓는 방향과 겹치는 방식에 따라 단단해야 할 곳과 휘어야 할 곳을 다르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실큐의 프레임은 별도의 관절 없이도 몸의 무게에 따라 휘었다가 원래 형태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하지만 탄소섬유를 여러 겹 쌓는 공정은 지나치게 복잡하여 대량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스틸케이스는 탄소섬유 버전에서 구현한 움직임을 더 널리 생산하기 위해, 유사한 성능을 내는 고성능 폴리머와 새로운 성형 공정까지 개발했습니다. 탄소섬유가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폴리머는 그 형태를 하나의 제품으로 확장한 셈입니다. 실큐는 약 30개의 부품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용자가 조절해야 하는 것은 높이뿐입니다.
레버와 관절, 좌판 아래의 두꺼운 기계장치가 줄어들자 실큐는 등판에서 좌판 아래까지 하나의 선이 이어지는 듯한 모습을 갖게 됐습니다. 힘을 견뎌야 하는 곳은 두껍고, 움직여야 하는 곳은 가늘게 설계되어 그 차이가 의자의 윤곽으로 그대로 드러납니다. 곡선과 두께 변화는 보기 좋으라고 더한 장식이 아니라 움직임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이전의 사무의자가 메커니즘을 좌판 아래에 감췄다면, 실큐는 메커니즘을 형태로 보여줍니다. 곡선이 구조이고, 곡면 자체가 메커니즘입니다.
세일 체어의 등판 측면
비슷한 시기에 허먼 밀러의 세일은 등판의 프레임을 없앴습니다. 2010년 이브 베하가 디자인한 세일은 골든게이트 브리지처럼 최소한의 재료로 큰 힘을 버티는 현수 구조에서 출발했습니다. 좌판 아래와 Y자 구조 사이에 등판 소재를 팽팽하게 매달고, 엘라스토머 가닥의 두께와 장력을 자리마다 다르게 설계했습니다. 굵고 팽팽한 곳은 몸을 단단히 받치고 얇은 곳은 더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폼과 넓은 판을 없앤 흐름이 여기서 등판의 테두리까지 지운 것입니다.
프레임이 사라지자 세일의 형태도 달라졌습니다. 뒤에서 보면 Y자 구조만 선명하게 남고, 그 사이를 반투명한 가닥들이 채웁니다. 등판은 하나의 단단한 판이라기보다 공중에 걸린 그물이나 바람을 받은 돛처럼 보입니다. 실큐가 좌판 아래의 기계장치를 얇고 연속적인 곡선으로 바꾸었다면, 세일은 등판의 프레임을 팽팽하게 당겨진 가닥과 열린 경계로 바꾸었습니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의 변화가 두 의자에서 전혀 다른 실루엣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물론 대가도 따랐습니다. 조절 장치를 줄이면 사용자가 직접 바꿀 수 있는 범위도 함께 줄어듭니다. 재료가 미리 정해둔 움직임이 내 몸에 맞지 않을 때는 레버를 돌려 수정할 여지도 적어집니다. 곡목이 가능한 곡률의 한계를 남기고 합판이 갈라지는 지점을 남겼듯, 스스로 반응하는 재료에도 고유한 범위와 한계가 있습니다. 의자의 외형이 단순해졌다고 해서 설계까지 단순해진 것은 아닙니다. 바깥에서 사라진 복잡함은 재료와 형태의 안쪽으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Note on the Chair 03
세일 체어, 2011년 : 구조로서의 디자인
세일의 이름은 바람을 받는 돛을 뜻하는 ‘sail’에서 왔습니다. 옆에서 바라본 등판은 팽팽하게 부푼 돛을 닮았습니다. 철자에 ‘y’를 넣은 이름은 등판을 지탱하는 Y자 구조도 가리킵니다. 골든게이트 브리지 아래를 지나던 배와 그 배의 돛, 배를 내려다보던 다리의 구조가 하나의 의자 안에서 만난 셈입니다. 이브 베하는 다리의 외형을 그대로 축소하지 않고, 적은 재료로 큰 힘을 견디는 구조적 원리를 의자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세일의 형태는 자연물의 모방이라기보다 공학적 원리를 시각적으로 번역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세일은 재료를 덜 쓰면서도 등판의 움직임을 더 자유롭게 만들었고, 동시에 사무의자의 인상까지 가볍고 투명하게 바꿨습니다. 구조를 감추기 위한 외피를 없애자 구조 자체가 의자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세일에서 기능과 구조, 형태는 더 이상 서로 다른 층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ㅣ형태를 만드는 것은 미감일까, 재료일까?
다섯 번의 소재 전환과 그 뒤에 나타난 새로운 질문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규칙이 보입니다. 새로운 재료는 늘 고정관념을 깨는 방식으로 등장했습니다. 나무는 휘지 않는다, 의자에는 다리가 넷이다, 면은 한 방향으로만 휜다, 구조와 표면은 별개다, 앉으려면 무언가를 깔아야 한다. 이 한계들은 차례로 해소되었지만, 하나의 한계가 사라질 때마다 새로운 조건이 생겼습니다. 형태의 역사가 자유의 확장사라기보다 제약의 교체사에 가까운 이유입니다.
다만 재료가 형태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료는 만들 수 있는 범위를 정하지만 그 범위 안에서 무엇을 고를지까지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브로이어가 강관에 라탄을 엮은 것은 구조의 필연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판단이었습니다. 판톤은 반대로 형태를 먼저 그리고, 그 형태를 버틸 재료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결국 의자의 형태는 세 힘이 만나는 자리에서 결정됩니다. 몸과 쓰임이 부과하는 조건, 재료가 허락하는 가능성, 그리고 무엇을 아름답다고 볼 것인가 하는 디자이너의 해석입니다. 이 글이 따라온 것은 그중 재료의 힘이었습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지금 앉아 계신 의자의 모양은 누가 결정했을까요? 그것은 디자이너의 취향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사람이 당시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재료가 허락한 결과였을까요? 아마도 두 힘이 서로 협상해온 결과에 가까울 거예요. 둘 사이의 긴장은 앞으로도 새로운 의자에 대한 상상력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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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팅랩은 앉음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는
시디즈의 콘텐츠 시리즈입니다.
의자를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체어토크',
의자의 공학적 메커니즘부터
앉음을 둘러싼 흥미로운 논쟁들,
건강하고 효율적인 앉음을 위한 전문가 가이드까지
의자의 공학적 메커니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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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와 앉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