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자 오진승의 마음이 편한 의자

정신의학자 오진승의 마음이 편한 의자

정신의학자 오진승의 마음이 편한 의자

“내담자와 마주 앉는 순간,
저의 일은 시작됩니다.
첫인상부터 감촉까지, 의자가 전하는
느낌이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의 자아는 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합니다.
앉은 채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심리상담에서는
앉음의 퀄리티에 따라 치료의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지요.
어떤 의자에 앉아야 마음을 더 편하게 열 수 있을까요?
어떤 루틴으로 앉아야 환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을까요?

유튜브 채널 '닥터 프렌즈'를 통하여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친근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의사 오진승과 만났습니다.
진료실에 놓인 세 개의 의자에 대하여
그와 나눈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흥미로웠습니다.
 
이름 오진승
직업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앉는 이유 적당한 긴장감을 위해
앉아 있을 때 루틴 주기적인 목과 어깨 스트레칭
선호하는 의자 착용감이 단단한 의자, 헤드레스트가 있는 의자
  

| 몸과 마음의 접점, 의자


보통 의자에 앉는 순간 일을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의사로서 진료를 보기 위해 앉아 있는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무래도 의자에 앉는다는 건, 직장인에게는 긴장감이 시작되는 순간이죠. 저는 진료 시작 전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 그 날 방문할 환자들의 차트를 봅니다. 지난 내담 때 컨디션이 많이 안 좋으셨거나, 제가 처방한 약이 효과가 없었다거나 하면 특히 걱정이 돼요.

몸이 긴장하면 머리와 목 쪽에 가장 먼저 반응이 오기 마련이죠. 원장님은 어떠신가요?
오늘처럼 야간 진료가 있는 날은 열두 시간 가까이 앉아 있어요. 자는 시간을 빼면, 하루 중 거의 70%를 의자에서 보내는 셈이죠. 오래 앉아서 모니터를 봐야 하니 아무래도 목이 제일 힘듭니다. 저는 거북목 증상으로 정형외과에 다닌 적이 있어요. 그래서 특히 목이나 어깨, 승모근 쪽이 많이 뻐근해요. 

헤드레스트가 있는 의자가 중요하겠네요.
앉았을 때 제 목이나 머리를 감싸주는 의자를 선호합니다. 특히 머리 아랫부분을 받쳐주는 게 중요해요. 헤드레스트가 없는 의자는 진료할 때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회전이 되는 의자여야 해요. 환자와 모니터를 계속 번갈아가며 봐야 하니까요. 몸이 고정되어 있으면 근육이 더 쉽게 피로해집니다. 팔걸이도 중요해요. 잠깐이라도 팔을 올리고 쉴 수 있으면, 목과 승모근의 긴장이 많이 풀려요. 팔걸이가 없으면 팔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다보니 어깨가 더 올라가고, 몸 전체가 긴장하죠. 

반면 내담자 의자는 좀더 간결해요. 좌판도 생각보다 푹신하지 않고, 등판도 낮군요.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좁고요.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나요?
진료실은 단순히 위로를 받는 곳이 아니라, 본인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스스로 이해해야 하는 공간이거든요. 때로 어떤 진단을 위해서는 검사를 실시해야 하는데, 너무 편안하면 오히려 집중이 흐트러지죠. 그래서 내담자 의자는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가 좋아요. 너무 푹신하지 않고, 그렇다고 딱딱하지도 않은 정도. 푹신해서 몸이 파묻히는 의자보다는 허리를 세울 수 있는 형태가 좋습니다. 금속 재질처럼 차가운 촉감은 피하고, 앉았을 때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재질이면 좋겠어요.

결국 의사와 환자 모두 의자의 재질이나 감촉에 따라 마음 상태에 영향을 받는군요.
그럼요.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라 연결돼있는 거죠. 마음이 긴장하면 자세가 경직되고, 자세가 편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져요. 스트레칭이나 휴식이 부족하면 마사지를 받는데, 그 때도 몸의 경직이 풀어지며 마음도 풀어지는 느낌을 받거든요. 자세도 몸의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예요.

| 감정을 조절하는 앉음


유튜브 채널에서 한 번은 “내담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진료가 시작된다”라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의자에 앉는 자세만 봐도 많은 걸 유추할 수 있어요. 어깨를 움츠리거나 몸을 꼼지락거리면 불안하거나 초조한 상태인 거고, 의사 쪽으로 몸을 과하게 숙이는 것도 비슷한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반대로 너무 느긋하게 몸을 뒤로 기댄 분들은 편안해서가 아니라, 아직 마음을 열 준비가 안 된 상태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사실 병원에서 처음 보는 분들에게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환자분이 지금 말씀하시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겠구나 싶죠.

지금은 많이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알고 있지만, 정신분석학에서는 리클라이너나 소파에 거의 누운 채로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정신분석학 상담에서의 원칙은 내담자가 카우치처럼 편안한 곳에 누워 있고, 의사가 내담자의 머리맡에 있는 거예요. 내담자가 의사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채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거죠. 정신분석에서 많이 쓰는 원리는 ‘자유연상’이라는 건데, 내담자가 방어기제마저 다 내려놓은 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돼요. 그래서 최대한 나른한 상태로 이야기할 수 있게 푹신한 의자를 사용하는 거예요. 실제로 저희도 바이오 피드백이나 스프라바토라는 치료를 진행할 때는 아주 푹신하고 몸을 감싸주는 리클라이너를 사용하는데, 그 때 중간 중간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다 보면 환자분들이 진료실에서보다 더 격하게 감정을 표현하시기도 해요. 오랜 시간 편안한 의자에 누워 치료를 받는 것과, 비교적 단단한 의자에 앉아 상담하는 것은 다른 일이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상태에 집중해야 하는 게 정신건강의학 상담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곳에서는 방어기제까지도 포함해서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겠네요.
그렇죠. 방어기제가 꼭 나쁜 것은 아니고,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거거든요. 그 대신 환자분마다 주로 쓰는 방어기제가 무엇인지, 회피인지 유머인지 억압인지 등을 살펴요. 그러면 의사나 환자 모두 어떤 상황에서 방어기제가 효과가 있는지, 지나쳐서 주변 사람이나 환자 본인에게 어떨 때 스트레스로 작용하는지 알 수 있죠. 

진료를 본다는 게 의사가 일방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면서 진행되는 거군요.
상호작용이 잘 되는 분들이 있고 아닌 분들이 있긴 해요. 어떤 분들은 증상의 원인을 찾으려고 지금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시는데, 스스로의 심리 상태에 대해 전혀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분들도 있죠. 그런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게 정신건강의의 역할이죠.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무슨 말을 해도 비난받거나 공격당하지 않을 거란 신뢰가 쌓이도록 배려해야하는 거죠.

문득 병원이라는 공간은 왜 주로 흰색이나 뉴트럴한 톤을 쓰는지 궁금하네요. 이곳도 전체적으로
흰색을 쓰고, 내담자 의자는 베이지 톤을 사용했어요.
정신건강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익명성’ 그리고 ‘중립성’입니다. 너무 강한 색이나 차가운 인테리어보다는 중립적인 톤이 좋다고 생각해요. 병원은 누구나 봤을 때 호불호가 없고, 누군가의 취향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어야 하죠. 환자에 따라 다양한 개인적 취향과 지향점이 있는데, 그것이 의사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위축되기 마련이니까요.
 

Chairs for Doctor and Patients

치료용 리클라이너
바이오 피드백과 스프라바토 치료에 사용하는 의자입니다. 바이오 피드백은 환자가 직접 자신의 생체 신호를 보며 자율신경계 운동을 촉진하는 요법입니다. 스프라바토는 우울증 완화를 위해 액상 약을 코에 분사하는 치료법이에요. 치료실의 부드럽고 푹신한 리클라이너는 환자가 긴장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원활한 치료를 위해 거의 누울 수 있는 각도로 세팅해두었죠.
내담자용 의자
허리까지 올라오는 낮은 등판에 철제 프레임으로 구성된 가죽 의자입니다. 앉았을 때 딱딱하진 않지만 푹신하지도 않은, 중립적인 감촉의 의자이지요. 환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차분한 핑크 베이지 컬러를 골랐습니다.
의사용 의자
헤드레스트와 팔걸이가 달린 사무용 의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좌판에는 적당히 탄탄한 패브릭 소재가, 등판에는 메쉬 소재가 적용되어 있으며, 팔걸이는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두었습니다. 오랜 진료에도 피로해지지 않는 동시에, 환자를 대하는 긴장감이 흩어지지 않도록 착석 시의 탄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ㅣ마음은 긴장과 이완 사이에


의자에 따라 마음 상태가 변한다면, 휴식을 취하실 때 쓰시는 의자가 따로 있을 것 같은데요. 집에서는 주로 어떤 의자를 쓰시는지부터 얘기해볼까요?
집에서는 완전히 반대예요. 병원에서는 긴장 모드지만, 집에서는 아예 풀어집니다. 일은 병원이나 카페에서만 하려고 하고, 집에서는 아무 일도 안 해요. 그래서 집에서는 푹신한 패브릭 소파를 씁니다. 몸이 파묻힐 정도로 편한 걸 좋아해요.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에 긁힘이 덜한 패브릭으로 고르긴 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부드럽고 따뜻한 질감을 고릅니다. 병원에서는 긴장된 몸을 세우고, 집에서는 그 긴장을 완전히 풀어요. 의자가 저에게는 ‘온오프 스위치’ 같아요.

평소 집에서 영화를 즐겨 보신다고 알고 있어요.
영화를 보는 걸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도 있지만, 영화를 보다가 스르륵 잠드는 순간을 참 좋아해요. 몸이 푹 파묻힌 채로 슬쩍 조는 거죠. 그만큼 내가 편안하다는 증거니까요. 

사무용 의자는 쿠션감도 단단하고 기동성이 있어야 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완전히 안길 수 있는 소파를 쓰시는군요.
그렇죠. 사무용 의자가 조금만 푹신해도 의사는 오히려 무기력해집니다. 환자가 많지 않은 때는 나른해지고, 몸이 파묻히니까 자세가 무너지고요. 그래서 진료실 의자는 푹신하지 않되, 장시간 앉아 있어도 허리나 엉덩이가 아프지 않은 정도가 좋아요. 약간의 긴장감이 있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이전에는 등판에도 약간의 쿠션감이 있는 의자를 사용했는데, 지금 메쉬 소재의 등판을 사용하니 단단함 면에서 훨씬 좋아요.

말씀하신대로 몸과 마음이 연결돼 있다면, 내담자의 의자와 의사의 의자는 각각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할까요?
의사의 의자에 있어서는,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아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를 계속 상대해야 하는데, 자세가 불편해서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얼굴에 티가 날 수도 있잖아요.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의사에게는 마음껏 이야기하기가 힘들죠. 반면 환자의 의자는 촉감 면에서 너무 차갑지 않아야 하고, 누가 보기에도 별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을만큼 무난한 느낌이 있어야 하죠. 너무 경직되거나 너무 나른해지지 않는 정도의 탄성이 좋고요. 의자에 앉았을 때 느끼는 감정 상태에 초점을 맞춰야 하죠.

오랜 시간 앉아서 긴장해야 하는 의사에게 가장 좋은 의자는 무엇일까요?
저도 좋다는 의자는 대부분 찾아서 앉아봤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사용자의 습관인 것 같아요. 결국 어떤 자세든 오래 있으면 다 문제예요. 아무리 좋은 의자라도 한 자세로 있으면 근육이 굳잖아요. 저는 중간중간 일어나 반대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해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고, 어깨를 크게 돌리고, 짬이 나면 스쿼트도 하죠. 핵심은 ‘고정되지 않는 것’이에요. 몸이 편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몸이 긴장되면 마음도 같이 경직됩니다. 그래서 자세를 자주 바꾸는 게 중요해요. 이건 몸과 마음,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겠군요.
"심리학적 측면에서 사용자를 돕는
의자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사용자의 질문에서 시작하는
앉음의 탐구 SITTING LAB
시팅랩은 앉음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는
시디즈의 콘텐츠 시리즈입니다.
사용자의 경험과 질문에서 시작해
의자와 앉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해갑니다.
심리학과 의자의 관계에 대하여
정신건강 전문의와 디자인 심리학자,
시디즈의 의자 전문가가
다양한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시팅랩 : 의자와 심리' 콘텐츠는
10월부터 11월까지 차례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Editor
김예린 Photographer 김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