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와 쉼의 문화사

의자와 쉼의 문화사

의자와 쉼의 문화사

"인류에게 의자는 언제나
'쉼'의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누가 앉느냐에 따라
그 쉼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져 왔지요."

의자의 역사는 곧 인류가 '쉼'을 정의해온 역사입니다.
권력자의 전유물이던 앉음이 모든 사람의 권리가 되기까지,
의자는 시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해왔습니다.

맹수가 조각된 고대의 팔걸이 의자부터
셰즈 롱그와 클럽 체어, 오피스 체어의 헤드레스트까지
디자인 저술가 김신이 의자의 문화사를 따라가며
‘좋은 앉음과 좋은 쉼’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김신 디자인 저술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했다. 월간 <미술공예>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고,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다. 현재 저술가로 활동하며 여러 매체에 디자인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 비평 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등이 있다.

"의자에 앉아 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마도 의자에 앉아 계실 겁니다. 누군가는 사무실 책상 앞에서, 누군가는 거실 소파에서, 또 누군가는 카페 의자에서. 너무나 당연해서 의식조차 하지 않는 이 행위, '앉아서 쉰다'는 것. 하지만 인류의 긴 역사를 돌아보면, 이 당연함은 사실 꽤 최근에야 완성된 것이지요.
기원전 1만 년 무렵 농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류의 삶은 끊임없는 이동 그 자체였습니다. 먹을거리를 찾아 걷고, 사냥감을 쫓아 달리고, 위험을 피해 옮겨 다녔지요. 직립보행이라는 인류의 위대한 도약은 다리에 끊임없는 압력을 가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산책길에서, 전시장에서, 1시간만 걸어도 금세 피로가 몰려오는 경험을 떠올려보세요. 그때 허름한 벤치라도 하나 발견하면 느껴지는 그 안도감. 수만 년 전 원시 인류가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았을 때도 분명 같은 감각이었을 겁니다.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된 일이나 먼 길 끝에 고마운 마음으로 앉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다시 말해, 의자라는 가구의 가장 본질적인 존재 이유는 '일하기'가 아니라 '쉬기'에 있는 것이지요. 다리를 혹사시키며 생존을 확보한 인류에게, 앉아서 쉰다는 행위는 노동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보상이었습니다.

ㅣ앉아서 쉰다는 특권

차탈휘위크의 여신상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의자 없이도 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사냥을 마치고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깊은 안정감과 유대감을 느꼈지요. 바닥에 앉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 가능했습니다. '더 높은 자리에 앉는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변화는 신석기 시대, 농경의 시작과 함께 찾아옵니다. 농경은 잉여 자원을 낳았고, 잉여 자원은 계급을 만들었습니다. 관리하는 자와 생산하는 자가 나뉘었지요. 최고 우두머리는 자신의 지위를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 특별한 옷을 입고, 다른 이들이 바닥에 앉아 있을 때 자신만은 더 높은 곳에 앉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은 것이지요.
기원전 6천 년경, 가장 오래된 도시 유적지 차탈휘위크(Çatalhöyük)에서 발견된 여신상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팔걸이 위에 맹수의 머리가 조각된 의자에 앉은 이 여성은 부족의 높은 위치에 있던 인물이었지요. 4천 년 뒤에 만들어진 투탕카멘의 의자 역시, 나무 위에 금을 입히고 팔걸이에 맹수를 조각한 같은 구조입니다. 두 의자의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은 보호받을 자격이 있으며, 모든 이가 서 있는 동안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것. 앉는다는 것, 즉 쉰다는 것은 계급의 가장 강력한 표시였습니다.
고대 로마 특권층의 의자, 트리클리니움

고대 그리스·로마로 가면 이 특권은 더욱 노골적인 형태를 띱니다. 왕이 없던 그리스의 지배계층은 자신이 육체가 아닌 머리로 일하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이때 등장한 것이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입니다. 침대에 가까운 이 가구 위에서 그들은 비스듬히 누운 채 음식을 먹고, 공연을 감상하며, 만찬의 시간을 극한까지 늘림으로써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과시했습니다. 쉰다는 것이 권력과 부의 전유물이던 시절, 트리클리니움은 그것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가구였던 셈이지요.
그런데 이 가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과자를 집어 먹으며 TV를 보는 모습, 어딘가 로마 귀족의 트리클리니움 만찬과 닮아 있지 않은가요?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인은 계급을 과시하기 위해 누웠지만, 현대인은 수고로운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누울 권리를 얻는다는 점이지요.

ㅣ휴식의 의자에 새겨진 욕망

<스페인 복장을 한 여인>, 에두아르 마네

16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대항해시대와 식민지 개척으로 막대한 부가 쌓이면서 의자가 본격적으로 세분화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프랑스 절대왕정 이후, 가구는 권력의 필수적인 장식품이 되었지요. 이 시기를 대표하는 휴식 의자가 바로 셰즈 롱그(chaise longue)입니다.
셰즈 롱그는 반쯤 눕거나 기대어 앉도록 디자인된 의자로, 얼핏 보면 편안한 휴식을 위한 가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18세기 로코코 시대부터 신고전주의 시대까지, 이 의자에 앉는 건 주로 높은 신분의 여성들이었지요. 남성들이 앉는 포테유(fauteuil)가 커다란 등받이로 권위의 후광을 드리웠다면, 셰즈 롱그는 여성의 관능미를 드러내며 그 여성을 남성의 시선이 머무는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뒤셰즈 브리제(Duchesse brisée), 메리디엔느(Méridienne), 레카미에(Récamier) 등 형태는 다양했지만, 18·19세기 유럽 회화에서 이 의자들 위에 야릇한 포즈를 취한 여성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억압적 면모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의자가 페인팅 카우치(fainting couch), 즉 '기절 의자'입니다. 코르셋으로 허리와 가슴을 지나치게 조인 귀족 여성들이 연회장에서 기절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고, 기절한 여성을 눕히기 위해 별도의 기절실(fainting room)과 이 의자가 마련되었지요. 좌우 비대칭의 디자인과 우아한 곡선으로 '가장 여성스러운 셰즈 롱그'로 각광받았고, 20세기에도 여성 스타들의 화보 소품으로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급스러운 새장에 갇힌 존재의 현실이 있었지요. 같은 시절, 남자들은 왜 셰즈 롱그에 누운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한결같이 다리를 벌리고 곧추 선 자세로 표현되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주체의 이미지를 원했기 때문이지요.
물론 남자들도 누워 쉬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런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클럽 체어(club chair)입니다. 19세기 영국 젠틀맨스 클럽에서 관료, 군인, 전문직 종사자 등 상류사회 남성들에게 안식을 제공하기 위해, 값비싼 가죽으로 마감하고 푹신한 좌석과 높은 팔걸이를 단 이 의자가 태어났지요. 스프링을 내장한 쿠션과 가죽 마감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며, 등받이 옆으로 날개가 달린 윙백 체어(wingback chair), 버튼을 깊숙이 박아 마름모 패턴을 만든 체스터필드 소파도 클럽 체어의 일종입니다. 앉되 눕지는 않는, 권위를 유지하면서 쉴 수 있는 의자. 이것이 한국에서 '중역 의자'로 재해석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지요. 팔걸이에 목재를 덧대 한층 더 권위적인 외관을 부여한 것이 한국적 변용의 특징입니다.

ㅣ20세기, '쉼'의 민주화

LC4 셰즈 롱그, 르 코르뷔지에, 샬롯 페리앙

의자의 역사에서 진정한 전환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찾아옵니다. 오스트리아의 가구 장인 미하엘 토넷이 증기로 나무를 무르게 한 뒤 휘는 벤트우드(bentwood) 기술로 만든 흔들 셰즈 롱그는, 여성의 관능미가 아닌 순수한 '편안한 쉼'을 위한 의자였습니다. 18·19세기 셰즈 롱그가 몸을 비스듬히 여 앞을 보도록 유도했다면, 토넷의 셰즈 롱그는 그냥 편안하게 눕도록 설계되었지요. 특히 다리 부분이 한 번 꺾여 있는데, 이것은 관절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상태가 더 편안하다는 인체의 원리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 원리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이 독일의 의자 공학자 안톤 로렌츠(Anton Lorenz)입니다. 1938년, 그는 염분이 높은 물을 욕조에 채우고 사람을 눕혀 완전히 힘을 뺀 상태의 자연스러운 신체 형태를 관찰했습니다. 물 위에 떠 있는 사람의 다리는 토넷 셰즈 롱그의 좌석 각도처럼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있었지요. '이 형태대로 의자를 디자인하면 가장 편안하지 않을까?' 2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감도는 독일에서 그의 아이디어는 바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인체공학적으로, 또 기계적으로 다리 받침대가 올라오는 현대적 리클라이너의 메커니즘으로 완성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나라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리클라이너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는 풍경은, 바로 이 실험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한편 로렌츠의 실험보다 10년이나 앞선 1928년, 르 코르뷔지에와 샬롯 페리앙이 공동 작업한 LC4 셰즈 롱그는 의자 역사의 또 다른 분기점입니다. 바우하우스의 영향으로 속이 빈 강철관으로 프레임을 만든 이 의자는 과거 셰즈 롱그에 들러붙은 여성적 관능미를 완전히 벗겨냈지요. 건축 일로 바쁜 두 남성 건축가보다 스튜디오에서 인테리어 작업에 집중한 여성 건축가 페리앙의 기여가 큰 것으로 평가됩니다. 직접 모델이 된 페리앙은 홍보 사진에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지 않고 뒤통수를 보여주었습니다. 렌즈를 바라보는 순간 19세기 회화의 시선 구도로 회귀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이 의자는 남녀 모두를 위한, 성별의 구분이 없는 휴식의 의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셰즈 롱그는 크기가 크고 가격도 상당합니다. 작은 실내에 적합한 합리적 휴식 의자로는 라운지 체어가 제격이지요. 20세기 모더니즘 운동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고전양식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까지 모든 양식이 권력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모더니즘은 노동자를 위한 최초의 양식이었지요. 대량생산에 적합한 강철관이라는 산업 재료를 사용했고, 그 기계적 특성이 처음에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라운지 체어의 진정한 대중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실현됩니다.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의 LCM(Lounge Chair Metal)은 다리는 강철관, 좌판과 등받이는 합판으로 만들었습니다. 두툼한 쿠션도, 가죽 마감도, 팔걸이도 없이 합판을 그대로 노출시킨 이 의자는 트리클리니움, 셰즈 롱그, 클럽 체어가 공유하던 '휴식은 특권'이라는 관념과 정면으로 결별했지요. 의자에 앉아 쉬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보편적 권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의자들은 20세기 레전드 디자이너의 작품이라는 명성 때문에 본래 의도와 달리 가격이 높아졌습니다. 결국 가난한 노동자들은 싸구려 소파에 피로한 몸을 눕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요.

ㅣ헤드레스트와 현대적 휴식

20세기 중반 이후, 인류의 노동 풍경은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다리를 써서 움직여야 돈을 벌던 시대가 저물고, 장시간 의자에 앉아 일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다리의 압력에서는 해방되었지만, 그 대가로 허리와 척추에 부담이 집중되는 새로운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앉는 것 자체가 하나의 중노동이 된 셈입니다.
사람이 가장 편안한 상태는 눕는 것이지요. 누우면 몸의 압력이 최소화됩니다. 하지만 눕는다고 압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잠을 잘 때 끊임없이 뒤척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몸의 특정 부위에 압력이 집중되면, 의식과 무관하게 몸 스스로가 자세를 바꾸라고 명령합니다. 앉아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앉아 있다가 자꾸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것, 우리는 의식이 알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몸이 의식에게 명령을 내린 결과이지요.
현대의 오피스 체어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답입니다. 틸팅 메커니즘으로 몸의 미세한 움직임을 자유롭게 받아주고, 압력을 완충하는 소재의 좌석과 등받이로 장시간 앉기의 고통을 덜어주지요. 이것은 본질적으로 '앉기'와 '눕기'의 절충입니다. 고대 로마의 트리클리니움부터 근대의 셰즈 롱그, 현대의 리클라이너까지, 인류의 모든 휴식용 의자는 '일한 뒤에 쉰다'는 고통과 쾌락의 분리를 전제로 했습니다. 반면 현대의 오피스 체어가 추구하는 것은 일하는 중에도 쉼이 가능한 구조, 긴장과 이완의 통합이지요.
그런데 이 통합에서 오랫동안 간과되어 온 부위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머리와 목입니다. 허리와 등, 좌판과 팔걸이에 대한 인체공학적 연구는 비교적 일찍 시작되었지만, 성인 체중의 약 8%를 차지하는 머리를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늦게 주목받았지요. 무게 약 5kg의 머리를 하루 종일 경추와 목 근육만으로 지탱하는 것은, 어깨와 목의 만성적인 긴장과 피로로 이어집니다.
헤드레스트는 바로 이 마지막 퍼즐 조각입니다. 의자의 문화사를 돌아보면, 머리를 기대는 행위는 언제나 '완전한 이완'의 상징이었지요. 트리클리니움에 비스듬히 누운 로마 귀족, 셰즈 롱그에 머리를 기댄 근대의 여성, 리클라이너에 고개를 젖힌 현대인까지, 머리의 무게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야말로 몸이 '이제 쉬어도 좋다'고 인식하는 결정적 신호였습니다. 현대의 오피스 체어에 장착된 헤드레스트는 이 오래된 쉼의 감각을 업무 환경으로 가져온 것이지요. 등을 기대고 머리를 맡기는 순간, 경추의 긴장이 풀리면서 목과 어깨가 이완됩니다. '앉기'와 '눕기'의 절충점에서, 헤드레스트는 눕기 쪽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간 장치인 셈입니다.
물론 헤드레스트가 효과적이려면 단순히 있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마다 앉는 자세와 체형이 다르고, 업무 중 몸을 기대는 각도도 시시각각 변하지요. 높이와 각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틸팅과 연동되어 등판이 기울어질 때 머리도 자연스럽게 따라가야 합니다. 좋은 헤드레스트란 결국, 우리 몸이 '지금 잠깐 쉬고 싶다'고 보내는 신호에 가장 섬세하게 응답하는 장치이지요.

"좋은 의자는 일과 쉼의 경계를 허무는 가장 오래된 발명품입니다."

의자의 문화사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선명한 흐름이 보입니다. 소수 권력자의 특권이던 쉼이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가 되기까지, 의자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지요. 그리고 지금, 의자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한 뒤에 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동안에도 몸을 쉬게 하는 것. 긴장과 이완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앉음 안에 통합하는 것.
트리클리니움에서 셰즈 롱그로, 클럽 체어에서 라운지 체어로, 그리고 리클라이너에서 헤드레스트를 갖춘 현대의 오피스 체어로. 인류가 걸어온 쉼의 의자 역사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쉴 수 있을까?'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그 의자는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고 있나요? 좋은 의자는 당신의 몸이 '쉬고 싶다'고 보내는 가장 작은 신호에도, 머리 끝에서 허리 끝까지, 섬세하게 응답하는 파트너입니다.

🪑사용자의 질문에서 시작하는
앉음의 탐구 SITTING LAB​​

시팅랩은 앉음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는
시디즈의 콘텐츠 시리즈입니다.
사용자의 경험과 질문에서 시작해
공공 교육 건축가의 공간에 대한 관점,
학습용 의자의 인간공학까지
의자와 앉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해갑니다.

시팅랩 시리즈의 [STUDY] 칼럼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연구자와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의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합니다.



Editor 정미환 Writer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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