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웨버 인터뷰 : 움직이는 몸, 움직이는 의자

제프 웨버 인터뷰 : 움직이는 몸, 움직이는 의자

제프 웨버 인터뷰 : 움직이는 몸, 움직이는 의자

"몸이 움직이며 취하는 다음 자세가
가장 좋은 자세입니다.”

가만히,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좋은 앉기’일까요?
의자 디자인의 대가 제프 웨버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그에 따르면, 움직이는 몸이야말로
건강한 앉기와 오피스 체어의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 핵심에 자세와 틸트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프 웨버 Jeff Weber

제프 웨버는 미네소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후, 허먼 밀러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빌 스텀프와 함께 오피스 가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엠바디 체어를 선보였습니다. 현재는 스튜디오 웨버(Studio Weber & Associates)를 이끌며 인체공학과 앉기의 미래, 새로운 오피스 가구 디자인을 실험 중입니다.
  

Jeff Weber Timeline

1994 | 에어론 체어 (Aeron) – 디자이너로 참여한 의자. 최초의 인체공학 기반 틸트 시스템, ‘Zero Gravity’ 개념을 도입한 오피스 체어.
2008 | 엠바디 체어 (Embody) – 빌 스텀프와 제프 웨버의 협업으로 탄생한 오피스 체어. 컴플라이언스 메커니즘이라는 유연한 구조 설계를 통해 정교한 미세 움직임을 실현한 의자.
2020s | 리브 (LIV)  – 코로나 팬데믹 이후 커뮤니티와 일상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기 시작한 웨버 스튜디오의 라이프스타일 가구 브랜드. 브랜드의 철학은 '편안함과 지지'.

"자세는 하나의 연속체예요. 고정되지 않고 흐르는 거죠."

  

당신은 오피스 체어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에 참여해온 인물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앉는 자세’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죠. 이 단어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당신에게 ‘자세’란 무엇인가요?
제 일의 핵심이죠. 그리고 평생 배워야 하는 주제이기도 해요. 저는 자세를 단순히 ‘앉는다’는 행위로 보지 않아요. 밤에 누워 자고, 아침에 일어나 앉고, 하루 종일 이런저런 활동을 오가다가 다시 누워 ‘회복 자세’로 돌아가는 그 흐름 전체가 자세예요. 그 연속성 안에서 우리가 연구해야 할 건 정말 많죠.


앉는 자세를 넘어서, 인간의 하루 전체를 보는 거네요.
맞아요. 게다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자세도 달라지죠. 예를 들어 예전 수동변속기로 운전할 땐 몸을 능동적으로 써야 했어요. 기어 바꾸고, 클러치 밟고… 몸이 긴장되어 있었죠. 근데 요즘 자동차는 전부 오토매틱이니, 다들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 앉아서 운전하잖아요. 우린 이런 모든 자세를 ‘연속체(continuum)’로 봅니다. 그 안에서 어떤 자세가 건강에 좋은지, 어떤 자세가 그렇지 않은지 파악해요. 데이터를 수치화하고 시각화해서 분석하고 있어요. 꽤 복잡한 그래프들이 오가죠.
핵심은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떤 활동에 참여하고 언제 앉는 게 효율적인지를 이해한 후, 비로소 디자인 프로세스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리서치가 정말 중요해요. 엠바디 체어를 개발할 때, 리서치에만 초반 2년을 들였죠. 사용자 집단에 대한 공감과 이해, 거기서부터 의자 디자인이 시작됩니다.

"닷컴 버블과 컴퓨터의 등장은 작업용 의자의 개념을 영원히 바꿔놓았죠."



당신의 커리어는 시대의 흐름, 특히 자세라는 개념에 대한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돌아보면 제 커리어는 세 가지 큰 흐름으로 나뉘어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거대한 경제적 변곡점들이죠. 닷컴 버블,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특히 닷컴 시대의 스타트업들이 앞다퉈 최고급 솔루션을 원했고, 그게 에어론 체어의 성공으로 이어졌어요. 그땐 정말… 폭발적으로 팔렸어요. 허먼 밀러가 수요를 감당 못 할 정도였죠. 투자자들도 몰려들었고, 매니저들에게 최고의 장비를 갖추게 해주려 했어요. 그 중심에 에어론 체어가 있었던 거고요.
코로나 팬데믹도 큰 사건이었어요. 자세와 연결해보자면, 의자의 용도 자체가 고집중 작업 의자에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공동체 공간, 친환경적 공간, 코로나 이후의 사무실 복귀 같은 이슈에 훨씬 큰 관심이 쏠려 있죠.


닷컴 버블 시기에 대해 얘기해보죠. 의자 디자인이나 인간공학에도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나요?
에어론 체어는 데스크탑 컴퓨터가 중요한 오피스 기술, 즉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어요. 그 예견이야말로 빌 스텀프의 천재성이었죠. 인간과 컴퓨터 사이 인터페이스의 변화를 예상하고,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의자의 좌판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요구하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이제 사람들이 더 오래 앉아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앉았다 일어나는 행동 (sit-stand)' 개념이 에어론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거의 기본 옵션이 됐죠. 예전엔 “앉아서 오래 일할 수 있게 하자”였다면, 지금은 “자주 움직이게 하자”로 패러다임이 바뀐 거예요. 자세를 스펙트럼으로 바라보게 되었죠.

 
‘앉았다 일어남 sit-stand’, 자세의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이 인상 깊어요. 
핵심은 그거예요. ‘움직일 수 있는 자유’. 앉아 있든 서 있든, 그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건강한 거죠.
그리고 장비 환경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책상 위에 100kg짜리 CRT 모니터를 올려뒀잖아요. 노트북부터 태블릿까지, 지금의 장비는 가볍고 유연하죠. 이젠 사용자가 디바이스에 맞추는 게 아니라, 디바이스가 사용자의 흐름과 자세를 따라갑니다. 저는 이 관계를 ‘작업의 두 반구(two hemispheres)’라고 불러요. 하나는 사람, 다른 하나는 입출력 디바이스. 이 둘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미세한 균형을 조율해주는 게 좋은 의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자세의 조율이라고 한다면, 틸트 메커니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당신의 디자인 철학에서 틸트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틸트는 의자의 심장이에요. 사용자의 몸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결정하죠. 초기에는 ‘너클 틸트’ 같은 단순한 메커니즘이 있었고, 빌 스텀프가 도입한 ‘니 틸트’도 있었죠. 그리고 에어론 체어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한 ‘발목-무릎-엉덩이 싱크로 틸트’는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움직일 수 있게 했어요. 그래서 저흰 그걸 ‘제로 그래비티 자세’라고 불렀어요. 엠바디 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가 ‘마이크로무브먼트’, 즉 아주 미세한 움직임까지 감지하고 대응하도록 설계됐죠.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거시적 움직임(gross)과 와 미세 움직임(micro)으로 나눠 보고, 그 둘을 결합하는 데 집중했어요. 그 결과가 엠바디 체어였죠.


‘움직임’이라는 이야기가 끝없이 나오는데요. 앉기에서 움직임이 왜 그렇게 중요한 거죠?
잊지 말아야할 건, ‘앉는다는 행위’가 절대 100% 건강하진 않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계속 서 있는 것’도 마냥 건강한 건 아니고요. 그래서 우리가 세운 명제가 하나 있어요. “최고의 자세는 사용자가 취할 다음 자세다(The next posture is the best posture).” 이 원칙을 기반으로, 우리는 수년간 ‘움직임이 가능한’ 의자에 집중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술집 바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처음엔 그냥 서 있다가, 팔을 기대고, 그러다 두 팔을 다 기대고, 결국 의자에 앉고 싶어지죠. 이건 술 때문이 아니라, 몸이 알아서 다음 움직임을 요구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건강한 반응이에요.
우리가 진짜 설계하고 싶은 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이에요. 사용자가 작업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편안함의 방정식. 의자는 사용자의 주의를 끌면 안 돼요. 그냥 거기 있어야 하죠. 말없이 편안하게.

"틸트는 오피스 체어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엠바디 체어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세를 처방한다 (prescribe)’는 표현을 사용하신 적 있죠. 처방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다음 자세에 맞춰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자세로 사용자를 유도하는 것이 목적인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건 ‘다양한 지지 범위를 제약 없이 제공하는 것’이에요. 최근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유연성)’라는 개념에 집중하고 있어요. 엠바디 체어는 다양한 컴플라이언스를 갖춘 제품들 중 하나죠.
컴플라이언스는 쉽게 말해, 가능한 적은 부품으로도 몸을 잘 지지하고 움직임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구조예요. 예를 들어 고무밴드도 일종의 컴플라이언트 메커니즘이죠. 고무 밴드를 이용해 틸트의 이중 작용을 설계할 수도 있거든요.


새로운 형태의 컴플라이언스가 틸트 메커니즘을 대체할 수도 있을까요?
맞아요. 우리는 의자 하단에 장착되던 전통적인 틸트 메커니즘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죠. 이런 메커니즘은 보통 굉장히 정밀하고, 부품도 많고, 제조 비용도 비쌌거든요. 요즘 우리가 주목하는 건 의자의 구조 자체에 메커니즘을 녹여 넣는 방식입니다. 최근 이 방향으로 매우 흥미로운 발전이 있었고, 앞으로 자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이 컴플라이언트 시스템 안에 통합할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어요.
최근에도 우린 하나의 예시를 만들었어요. 예전의 틸트는 강철 메커니즘 안에 스프링과 베어링이 포함된 구조였고, 전체 구성 요소 수가 63개였죠. 그런데 이걸 3개의 구성 요소만으로 대체했어요. 사람의 몸과 상호작용하는 성능도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이건 정말 큰 가능성이자 발전이었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부품 없이도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가능케 하는 소재나 공법이 따로 있나요?
당연히 있죠. 폴리머 같은 고분자 소재부터 금속까지 다양한 재료들이 있어요. 중요한 건 ’무엇을 해결할 것이냐’에 따라 소재 선택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재료가 어떤 형태와 결합하는지에 따라 탄성과 강성이 달라지고요. 단순히 수학 계산만으로 풀 수 없어요. 직접 만들어보고, 부딪쳐보면서 배우는 방식이 핵심입니다. 이걸 우리는 ‘빌드 투 런(build to learn)’이라고 불러요. 의자를 디자인하는 건 반복해서 만들어보는 게 핵심이죠. 예를 들어 탁상용 오브젝트 같은 경우는 인터페이스가 단순해서 빠르게 여러 번 실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의자는 전혀 달라요. 사용자의 신체와 직접 닿기 때문에 복잡하고, 디자인과 물리학, 생리학이 얽혀 있죠.  그래서 전 의자 디자인이 더 도전적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겐 여전히 새로운 의자가 필요해요."

 

디자인에는 해묵은 논쟁이 있죠.
형태냐 기능이냐. 심미성과 퍼포먼스라고 얘기해볼 수도 있겠네요. 이 오래된 논쟁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떤가요?
형태와 기능, 둘 다 중요하죠. 하지만 저의 목적은 언제나 ‘인간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을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 디자이너들은 진실(truth)과 아름다움(beauty)를 통합하기 위한 작업을 하죠. 
요컨대, 형태는 단순히 예쁜 스타일이 아니라 기능의 표현이어야 해요. 기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용자가 받는 피드백은 측정 가능하지만, 형태는 감각적이고 주관적이에요. 그 주관이 기능을 배신해선 안 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의자’는 어떤 의자인가요?
존재 이유가 분명한 의자요. 잠깐 기대기 위한 의자든, 극한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의자든—그 목적이 뚜렷하면 좋은 의자예요. 사람들이 종종 묻죠. “우리가 또 다른 의자를 정말 필요로 하나요?”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책은 계속 필요하잖아요? 의자도 마찬가지예요.”
디자인은 기술과 예술을 조금씩 앞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에요. 특히 지금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큰 과제가 있어요. 소재, 생산, 유통까지 모두 새롭게 고민해야 하죠.


이런 기술적 전환과 디자인의 흐름 속에서, 디자이너로서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느끼세요?
전 지금이 디자이너에게 정말 흥미로운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축적해온 기술과 경험, 그리고 사고방식의 전환이 맞물려서—이제 진짜로 단순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는 시기가 왔거든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언어로 정리하는 일,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자세처럼요. 자세도, 디자인도, 결국은 고정된 게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연속체니까요.


🪑사용자의 질문에서 시작하는
앉음의 탐구 SITTING LAB
시팅랩은 앉음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는
시디즈의 콘텐츠 시리즈입니다.
사용자의 경험과 질문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의자 디자이너의 경험과 관점,
의자 메커니즘에 대한 작은 백과사전,
사용자를 위한 전문가 솔루션까지
의자와 앉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해갑니다.



Interviewer
재커리 라이언 후커

관련글

소설가 김중혁의 유연한 앉기

시팅랩 : 자세와 의자
소설가 김중혁의 유연한 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