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중혁의 유연한 앉기

소설가 김중혁의 유연한 앉기

소설가 김중혁의 유연한 앉기

“앉아서 하는 일이 쉽다고 하지만, 소설가에겐 가장 어려운 시간이에요.”

작가에게 의자란 피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앉아서 쓸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앉는 시간은 고통스럽지요.
소설가 김중혁은 무작정 오래 앉아있기 보다,
다양한 장소와 수많은 의자 사이를 오가며 작업합니다.
의자에 앉은 채, 몰입과 이완 사이를 숨바꼭질처럼 드나듭니다.
 
이름 김중혁
직업 소설가, 에세이스트
앉는 이유 얼개를 글로 완성시키는 시간
앉아 있을 때 루틴 흥분하면 다리가 의자 위로 올라감
선호하는 의자 착석감이 단단한 의자, 바퀴가 달린 의자
  

| 덜 앉고 싶은 소설가

  

소설가라는 직업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는 의자에 앉은 뒷모습이에요. 작가님은 평소 얼마나 오래 앉아 계시나요?
등단 전에는 열심히 쓰기 위해 오랫동안 앉아 있었어요. 그 무렵엔 카페를 하루에 4곳씩 돌아다니며 쓰기도 했죠. 노련한 작가가 되면서부터 앉는 시간을 최소화 했어요.


앉는 시간을 줄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등단하기 전 잡지 기자 시절에 오히려 더 오래 앉아 있었는데, 그때 허리디스크와 건초염이 생겼어요. 그래도 다른 작가들에 비하면 통증이 경미한 편입니다. 무작정 오래 앉아 있는 건 정신적 부담도 크고요.   
사무직을 화이트 칼라라고 하잖아요. 앉아서 하는 일이 더 쉽다는 의미가 담긴 표현인데, 소설가에겐 앉는 일이 가장 힘들어요. 의자에 앉아있는데 글이 도무지 안 써질 땐, 가슴이 답답해지고 심장이 두근댈 정도에요. 빈 화면에 커서가 움직이는 걸 가만히 보며 패배감이 몰려오죠.  


앉는 시간 없이는 작업이 불가능할 텐데, 앉기의 필요와 부담감 사이 해결책은 찾으셨나요? 
가능한 한 다양한 공간과 자세를 오가려고 해요. 요즘 제가 앉는 공간을 취재한다면, 작업실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얘기를 나누는 게 더 적합할 지도 모르겠네요. 산책길에서 이야기를 구상하고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며 얼개를 완성한 후, 그제야 비로소 의자에 앉아요. 
 
 
대중교통에서의 앉기 경험과 작업실에서의 앉기 경험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의자라는 건 앉는 순간 풍경을 제공하거든요. 그게 어떤 풍경인지 중요하죠. 구상 단계에서는 가만히 앉은 채 일정한 속도로 풍경이 변하면 더 잘 써집니다. 기차 타고 여행할 때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가장 좋아하는 건 기차의 특실이에요. 한편, 작업실의 의자는 외로운 공간이죠. 협업이 유행이 된 지금, 소설가는 오로지 혼자서 작업해야 하는 몇 안 되는 직업이잖아요. 텅 빈 모니터가 세계라면, 소설가는 그 앞에 앉아 세계를 독대하는 사람이에요. 혼자 세상을 마주하는 자로서 그 안의 심연을 얼마나 다채롭게 풀어낼 수 있느냐는 거죠.

| 몰입하고 이완하는 장소, 의자



작업에 몰입하실 때 취하는 자세나 버릇이 있으세요?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은 주로 새벽이에요. 새벽 한 시부터 쓰기 시작하면 네다섯 시쯤 절정에 치닫죠. ‘어, 이거 봐라, 잘 써지네?’ 싶을 때마다 양반다리를 하는 저 자신을 발견해요. 평소 스포츠를 즐겨 보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짜릿한 순간에 그 자세가 돼요.
 
 
작업실에 의자가 무척 많아요. 종류도 다양하고요. 이것 역시 몰입과 이완 사이를 오가기 위한 장치일까요?
소파, 리클라이너, 그리고 독서 의자가 여럿 있죠. 소파는 주로 쉴 때 앉지만, 편안하게 앉아 작업을 하기도 해요. 리클라이너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집에만 3대가 있어요. 휴식과 독서, 작업을 병행하고 싶었는데, 리클라이너 기능이 있는 사무용 의자는 찾기 어렵더라고요. 고심 끝에 선택한 브랜드가 IMG 컴포트 IMG Comfort 였어요. 비교적 견고하게 자세를 잡아주는 리클라이너예요. 수동으로 밀어서 움직이는 리클라이너를 선호하고, 평소 사용할 때에는 잠금장치를 조여서 등받이가 움직이지 않게 해둡니다. 독서 의자는 딱딱한 착석감을 좋아하고요.
  

그러고보니
소설가 중에는 누워서 작업하시는 분도 꽤 있다고 들었어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작업할 때도 있고, 가끔 서서 작업하기도 해요. 집에서는 수동으로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을 써요. 같은 자세로 계속 앉아 있으면 일에만 몰두해야 될 것 같은 기분에 숨이 막히거든요. 글을 쓸 때는 기본적으로 100% 에너지를 몰두하기보다 70% 정도만 사용해야 잘 써지는 것 같아요. 서 있으면 자세도 좀더 폭넓게 바꿀 수 있고, 동선도 한결 자유로워지죠. 자세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의자가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 더 유연한 앉기를 위하여

 

작업실의 의자들이 전부 다른 디자인이에요. 이 다양한 의자들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을까요? 
집중력에도 허리 건강에도 착석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카페를 전전하던 작가 초창기, 절대 앉지 않는 의자들이 있었어요. 엉덩이가 푹 꺼지지 않는지 쿠션감을 꼭 확인하곤 했죠. 라탄으로 된 의자나 스파게티 체어는 정말 싫어해요. 견고한 느낌이 들어야 해요. 작업실에 가구 디자이너 유창석의 의자가 많은데, 종이를 수없이 겹쳐 만들어 아주 견고하거든요. 비례나 균형감에도 까다로운 편이에요. 글을 여러 환경에서 쓰다 보니 각각의 상황에 맞는 높이로, 다양한 의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업실에 의자를 하나 더 들여놓으신다면, 어떤 조건들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실까요?
착석감과 기동성일 것 같아요. 올바른 자세를 잡아주는 사무용 의자의 장점과 리클라이너의 각도 조정 기능이 결합되면 좋을 것 같아요. 의자에 앉아 집중하는 동안에도 잠깐씩 마음을 이완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의자라면 바랄 것 없겠죠. 또 하나의 조건은 휠이에요. 의자를 빼어 앉은 후 다시 당겨 자리잡는 일은 ‘이제부터 일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바퀴 달린 의자는 스르륵 안착할 수 있으니 ‘한 번 해볼까?’ 정도의 캐주얼한 기분이 좋아요. 격의 없이, 스무스하게 작업에 들어가는 거죠.  
  
깊이 몰입하되 압박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연한 앉기’가 가능할 것. 작가님의 '최적의 의자’는 이렇게 정리해도 될까요?
그렇죠. 그걸 위해 여러 장소와 의자 사이를 돌아다니는 거고요.
  

"의자 하나로 ‘유연한 앉기’가 가능할까요?
그런 의자가 있다면 좋겠네요."


🪑사용자의 질문에서 시작하는
앉음의 탐구 SITTING LAB
시팅랩은 앉음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는
시디즈의 콘텐츠 시리즈입니다.
사용자의 경험과 질문에서 시작해
의자와 앉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해갑니다.
앉아서 글쓰기에 몰입해야 하지만
마감의 압박감에 계속 자세를 바꾸는 루틴,
'유연한 자세가 가능한 의자'를 묻는 소설가에게
세계적인 의자 디자이너와 전문가,
시디즈의 틸트 연구자가 대답을 준비합니다.
'김중혁 작가의 시팅랩 해답편'은
6월부터 7월까지 차례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Editor
김예린 Photographer 김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