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평균적인 체격의 조종사는 없었습니다.
평균에 맞춰 만든 조종석은
결국 아무에게도 정확히 맞지 않는 의자였지요."
의자 위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
대부분의 사람이 내리는 결론은 비슷합니다.
내가 자세를 잘못 앉고 있었다거나
내 몸이 좀 특이한 것 같다고 생각하지요.
기성품은 다수에게 맞게 만들어졌을 테니
안 맞는 쪽이 예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검증된 적 없는 전제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다수에게 맞는 하나의 치수'가 실재한다는 전제입니다.
그 전제는 70년 전에 이미 무너졌고,
의자 산업은 그로부터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내리는 결론은 비슷합니다.
내가 자세를 잘못 앉고 있었다거나
내 몸이 좀 특이한 것 같다고 생각하지요.
기성품은 다수에게 맞게 만들어졌을 테니
안 맞는 쪽이 예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검증된 적 없는 전제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다수에게 맞는 하나의 치수'가 실재한다는 전제입니다.
그 전제는 70년 전에 이미 무너졌고,
의자 산업은 그로부터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Key Takeaways | 핵심 요약
01 평균 체형의 함정
몸의 각 부위는 서로 다른 비율로 조합되기 때문에, 여러 인체 치수의 평균값을 모아 설계한 하나의 의자가 모든 사람에게 맞을 수는 없습니다.
02 사이즈별 설계의 차이
의자의 크기가 달라지면 좌판과 등판뿐 아니라 틸트, 중심봉, 베이스, 하중 기준까지 체형에 맞춰 다시 검토하고 설계해야 합니다.
03 내 몸에 맞는 선택
의자 사이즈는 키와 몸무게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앉은 오금 높이, 좌판에 닿는 넓적다리 길이, 엉덩이 너비, 앉은 팔꿈치 높이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ㅣ평균적인 몸은 왜 존재하지 않을까
20세기 중반 미 공군기 콕핏 내부
1940년대 후반 미 공군은 원인 모를 사고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제트기 시대가 열리며 항공기는 빨라지고 복잡해졌는데, 조종사들이 기체를 제어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 잦았습니다. 훈련 과정을 뜯어보고 기량을 의심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결국 시선은 조종석 자체로 향했습니다. 당시 조종석 치수는 1926년 남성 조종사 수백 명의 신체를 재어 얻은 평균값으로 정해진 것이었고, 군은 20년 사이 체격이 커졌으리라 짐작했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단순하겠지요. 새로운 평균을 구하면 해결될 일이니까요.
1950년 오하이오 라이트 공군기지에서 현역 조종사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인체의 140개 항목을 측정하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프로젝트에 투입된 길버트 S. 다니엘스 중위는 새 평균을 구하는 과업과 별개로,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스스로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평균적인 조종사’와 실제로 체격이 비슷한 조종사는 몇 명일까. 그는 조종석 설계에 가장 중요한 10개 항목을 골랐고, '평균'을 상당히 너그럽게 정의했습니다. 모든 항목의 값에서 가운데 30%에 들면 평균으로 인정하기로 했죠.
결과는 0명이었습니다. 열 항목 전부에서 평균값에 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심지어 세 항목만 골라 대조해도 3.5%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어떤 조종사는 팔이 길지만 다리가 짧았고, 어떤 조종사는 가슴이 크지만 엉덩이가 좁았습니다. 우리의 몸은 결코 균일하지 않으니까요. ‘평균적인 조종사’를 위해 설계된 조종석은 사실 아무에게도 맞지 않는 조종석이라는 것이 1952년 보고서의 결론이었습니다.
결국 공군은 평균을 기준점에서 폐기했고, 그 대신 새로운 기준을 세웠습니다. ‘모든 조종석은 각 치수에서 5~95%에 드는 조종사의 몸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제조사들은 비용과 기간을 들어 반발했지만 군은 물러서지 않았고, 엔지니어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해법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조절식 시트이고, 현재 거의 모든 자동차 좌석과 사무용 의자에 들어 있는 구조입니다.
이 기준은 조종석을 떠나 산업 전반으로 퍼졌습니다. 미 군사표준 Mil-Std-1472H는 2020년 개정판에서도 이를 '표적 사용자 집단의 중앙 90%'로 재확인했고, 독일의 작업장 설계 지침과 한국의 가구 치수 산정 연구 역시 동일한 범위인 5~95%를 전제합니다. 합리적인 관행이지만, 이 규범이 무엇을 포기하기로 한 것인지도 함께 봐야 공정하겠습니다. 미 국방 기술문서는 이 대목을 에둘러 말하지 않습니다. 치수 항목의 상위 5%와 하위 5%는 별도로 수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합니다. 양 끝 10%에게 의자가 맞지 않는 것은 사고가 아니라 사양인 셈입니다.
10%라는 비율에는 함정도 하나 있습니다. 항목 수가 늘어날수록 어느 한 항목에서 양 끝에 걸리는 사람의 비율은 빠르게 커집니다. 키는 중간인데 다리가 유독 길거나, 체격은 평범한데 앉은키가 큰 사람이 모두 여기 들어가지요. 결국 ‘설계 범위 밖’이란 극단적인 체형을 가진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한 부위라도 유난히 다를 수 있는 상당수의 이야기입니다.
Note on the Body
가운데 30%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 1952년, 조종석
다니엘스의 보고서는 <평균적 인간? The "Average Man"?>이라는 제목으로 미 공군 기술보고서 WCRD 53-7에 남아 있습니다. 애초에 군이 발주한 과업은 더 정확한 새 평균을 구하는 것이었고, 그의 검증은 그 작업 옆에서 혼자 진행한 곁가지였습니다.
그가 이런 의심을 품은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버드 학부 시절 졸업논문에서 수백 명 남학생의 손 모양을 측정한 적이 있었는데, 나이도 배경도 비슷한 그 균질한 집단에서조차 평균값으로 만든 '평균적인 손'은 어느 개인의 손과도 닮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Gilbert S. Daniels, 「The "Average Man"?」, WCRD Technical Note 53-7, 1952 / L. Todd Rose, 『The End of Average』(2016)
ㅣ의자 사이즈는 내 몸의 몇 군데와 맞아야 할까?
조종석이 그랬듯 사무용 의자도 몸 전체와 정확하게 맞을 필요는 없습니다. 앉는 행위에 직접 관여하는 부위는 생각보다 적거든요. 의자 설계자들이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인체 치수는 여섯 개 안팎으로 수렴합니다. 흥미롭게도 키와 몸무게는 그중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두 숫자가, 정작 인간공학자의 표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 셈이지요. 이 숫자들은 소비자가 내 몸에 맞는 의자를 판단할 때도 요긴합니다.
인간공학적 의자를 위한 인체 치수
인체 각 부위의 치수는 서로 독립적입니다. 다리가 긴 사람이 반드시 상체도 긴 것은 아니고, 엉덩이가 넓다고 어깨까지 넓지는 않습니다. 다섯 개가 어떤 의자와 잘 맞아도 나머지 하나가 어긋나면, 앉는 사람은 결국 그 하나를 계속 의식하게 되지요. 어떤 의자에 앉든 불편한 느낌이 있다면, 그 감각의 정체는 대개 이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자주, 가장 크게 어긋나는 축이 있습니다. 좌판 깊이입니다. 좌판이 몸에 비해 깊으면 등을 붙인 순간 무릎 뒤가 좌판의 앞 모서리에 닿는데, 바로 그 지점에 혈관과 신경이 얕게 지나갑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 압박을 피하려 엉덩이를 앞으로 빼게 되고, 그 순간 허리와 등판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기지요. 럼버서포트은 제 기능을 잃고, 골반은 뒤로 눕게 되며, 척추의 만곡은 반대 방향으로 말립니다. 좌판에서 시작된 문제가 결국 등판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축은 조절로 해결하기가 유독 까다롭습니다. 좌판이나 팔걸이 높이와 달리, 깊이를 조절하려면 좌판 자체가 앞뒤로 움직여야 하고, 그러면 좌판을 받치는 구조와 틸트 메커니즘, 등판과의 결합부가 모두 영향을 받습니다. 등판 있는 고정식 의자의 좌판 깊이를 작은 사람 기준으로 잡도록 국제 표준이 권고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넓적다리 압력 분산보다 허리 지지가 우선이라는 판단이지요. 조절로 닿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는 뜻입니다.
ㅣ의자 산업은 인체의 다양성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다양한 조절 기능을 갖춘 T50 2세대
‘평균 체격’ ‘평균 사이즈’가 환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의자 업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심했습니다. 인간공학과 기술의 발전은 크게 세 종류의 답을 찾아냈지요. 어떤 브랜드는 여러 사이즈의 의자를 출시했고, 의자의 조절 범위를 더 늘린 제품들도 있습니다. 의자가 몸에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설계한 브랜드도 있었습니다.
조절 범위를 넓히는 길이 오늘날 시장의 주류 문법입니다.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가능한 많은 축의 조절을 집약해 한 대로 넓은 체형을 감당하겠다는 접근입니다. 시디즈 T50 2세대의 헤드레스트는 높이 50m, 각도 55도의 범위를 갖고, 럼버서포트는 높이 50mm와 깊이 10mm 폭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팔걸이는 4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재고와 물류가 단일 품목으로 정리된다는 실용적 이점도 큽니다. 다만 이 방향에는 무언의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사용자가 실제로 조절을 해야한다는 것이죠.
다양한 인체와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 의자, 프리덤
조절을 없애는 길은 그 전제를 정면으로 의심했습니다. 전설적 의자 개발자 닐스 디프리언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를 조절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1999년 휴먼스케일 프리덤 체어에서 레버를 걷어낸 뒤 체중이 등판을 젖히는 힘과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 메커니즘을 넣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일 이력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1974년 헨리 드레이퍼스 어소시에이츠에서 <휴먼스케일 Humanscale>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설계자가 원반을 돌리면 조건에 맞는 인체 치수가 창에 나타나는 회전 다이얼 형식의 자료집이었지요.
조절을 없애는 길은 그 전제를 정면으로 의심했습니다. 전설적 의자 개발자 닐스 디프리언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를 조절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1999년 휴먼스케일 프리덤 체어에서 레버를 걷어낸 뒤 체중이 등판을 젖히는 힘과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 메커니즘을 넣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일 이력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1974년 헨리 드레이퍼스 어소시에이츠에서 <휴먼스케일 Humanscale>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설계자가 원반을 돌리면 조건에 맞는 인체 치수가 창에 나타나는 회전 다이얼 형식의 자료집이었지요.
남은 하나가 사이즈로 나누는 길입니다. 조절을 넓히는 쪽도 없애는 쪽도 결국 하나의 프레임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를 묻는데, 이 길은 프레임 자체를 체형대별로 다시 그립니다. 좌판의 깊이와 너비, 등판 높이 같은 치수가 처음부터 다른 값으로 설계되므로, 사용자가 아무것도 조작하지 않아도 부위별 지지점이 제자리에 놓입니다. 조절 장치에 기대지 않으니 구조가 단순해지고, 까다로운 파트인 좌판 깊이까지 설계 단계에서 다룰 수 있지요. 제조사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입니다. 금형과 생산 라인, 재고가 크기 수만큼 늘어나니까요.
ㅣ의자를 사이즈로 나눈 첫 시도는 언제였을까
1979년 이래 사이즈를 나눠 제작하는 한국 학생용 책걸상
의자를 크기별로 만든다는 발상이 1994년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보다 15년 앞서, 그것도 국가 표준으로 같은 시도를 했습니다.
의자를 크기별로 만든다는 발상이 1994년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보다 15년 앞서, 그것도 국가 표준으로 같은 시도를 했습니다.
1979년 8월부터 다섯 달간 공업진흥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신체 치수를 조사했습니다. 국민표준체위라는 이름이었고, 지금의 사이즈코리아가 여기서 출발합니다. 제각각이던 공산품 규격을 한국인의 몸에 맞춰 통일하겠다는 취지였고, 그렇게 나온 것이 호수제입니다. 5호를 평균에 놓고 위아래로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었지요. 의류와 책걸상을 포함해 41종의 표준이 이 체계 위에 세워졌지만, 국제표준과 미터법에 맞추기 위한 정리로 1990년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지금 여성복에서 쓰는 44, 55, 66 같은 표기는 그 시절의 흔적이 관습으로만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용 책걸상은 살아남았습니다. 한국산업표준 KS G 2010은 지금도 호수제로 작동하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 대부분이 학기 초에 키 번호에 맞춰 책상과 걸상을 배정받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성인용 사무 의자가 한 가지 크기로 버티는 동안, 아이들의 의자는 반세기 가까이 사이즈로 나뉘어 있었던 셈이지요.
여기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한 교실 안의 체격 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조절식은 비싸며 고장이 잦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지요. 무엇보다 구매자가 개인이 아니라 학교입니다. 수백 개를 한꺼번에 사는 쪽이라면 여러 크기를 섞어 사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입니다. 반대로 성인용 의자는 개인이 한 대씩 사는 물건이지요. 사이즈 분할이 아이들 의자에서 먼저 자리 잡은 것은 인간공학의 발전 단계 때문이 아니라 구매 구조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성인 시장 쪽의 사정이 어땠는지는 검증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2009년 한경대와 공주대, 그리고 퍼시스의 연구진이 국내 가구 규격 35종을 한국인 인체치수로 다시 계산해 본 적이 있는데, 연구 자료의 서문에는 조금 놀라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국의 가구 규격 대부분이 일본 치수를 그대로 가져와 쓴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사무용 의자를 검증한 결과 좌판 높이만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나머지 세 항목은 한국인의 몸에서 계산한 값과 어긋나 있었지요.
한쪽에서는 아이들을 일곱 등급으로 나눠 앉히면서, 다른 쪽에서는 이웃 나라 규격을 옮겨와 어른을 앉혀온 것입니다. 사이즈 분할이라는 문제의식이 한국에 없었던 게 아니라, 어른의 의자에는 적용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Note on the Chair 01
EN 1729 : 유럽은 나이가 아니라 키로 나눈다
유럽에는 교육기관용 의자와 책상을 규정하는 EN 1729라는 표준이 있습니다. 2007년에 승인되어 각국의 기존 표준을 대체했고, 유럽 전역 학생들의 인체측정 데이터를 근거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표준의 뼈대는 0호부터 7호까지의 사이즈 마크입니다. 각 호수에는 색이 지정되어 있어 교실에서 육안으로 구분되고, 호수를 결정하는 기준은 학년도 나이도 아닌 키입니다. 키가 큰 학생이라면 학년보다 한 단계 위의 호수를 쓰는 편이 낫다고 안내할 만큼 명시적이지요. 좌판 높이를 정하는 인체 치수로 이 표준이 지목하는 항목은 오금높이입니다.
구성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Part 1이 치수를 규정하고 Part 2가 강도와 안정성, 내구성 시험 방법을 규정합니다. 치수가 맞는지와 그 크기로 만들었을 때 버티는지를 별개의 문제로 다루는 것입니다. 2020년 한국의 책걸상 표준 개정이 호수 치수와 하중 시험 기준을 동시에 손본 것과 같은 구조이고, 크기를 바꾸면 견딤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이 두 대륙의 학교 가구 표준에서 각각 제도화되어 있는 셈입니다.
BS EN 1729-1:2015 / BS EN 1729-2:2023
ㅣ에어론은 왜 조절 대신 사이즈를 택했을까
성인용 사무 의자에서 사이즈 분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4년입니다. 허먼 밀러 에어론이 A·B·C 세 크기로 나온 그해가 분기점이었습니다. 이 결정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것이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선언이 아니라 구조적 제약에서 밀려 나온 결론이었기 때문입니다.
빌 스텀프와 돈 채드윅은 1980년대 고령자용 의자 프로젝트에서 압력 분산과 통기를 연구했고, 그 경험이 폼과 커버를 걷어낸 메쉬 구조로 이어졌습니다. 200명이 넘는 사용자를 측정하고 압력 분포를 매핑한 결과, 기존 의자들이 사실상 이용자의 3분의 2 정도에게만 맞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이 진단을 해결하려 할 때 메쉬 구조 자체가 발목을 잡았다는 점입니다. 펠리클이라 불린 이 소재는 단단한 프레임에 정확한 장력으로 걸려야 제 역할을 합니다. 장력이 설계값에서 벗어나면 체중 분산이 무너지지요. 그런데 좌판이 앞뒤로 미끄러지는 조절 구조를 넣으면 프레임과 직물의 관계가 매번 달라집니다. 조절 기능을 넣으면 장력을 잃고, 장력을 지키면 조절 기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에어론이 사이즈를 택한 것은 장력 구조를 지키기 위해 조절 구조를 포기한 교환의 결과였습니다.
사이즈가 셋으로 나뉘자, 구매자의 정확한 결정이 더 중요해졌죠. 허먼 밀러는 신장과 체중을 기준으로 한 권장 사이즈 표와 경계에 걸리는 사람들의 판단을 위한 조언을 고객들에게 제공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의류 사이즈표에 가까운 이런 가이드가 가구 시장에 존재한 적 없었죠. 침대와 책상, 의자 등 몸과 밀착하는 가구를 살 때 인체 치수를 확인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때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선택이 남긴 디테일 하나가 오래 회자됩니다. 의자 뒤쪽 등판 상단 안쪽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면 점자처럼 돌기가 만져지는데, 하나면 A, 둘이면 B, 삼각형으로 셋이면 C입니다. 크기를 라벨이 아니라 촉감으로 확인하게 만든 이 장치는, 이 의자가 사이즈를 제품 정보가 아니라 신체 정보로 취급했음을 보여줍니다. 옷의 태그가 눈에 보이는 자리에 붙는 것과 반대 방향의 설계지요.
각 사이즈들의 판매량은 달랐습니다. 중간값인 B 사이즈의 판매량이 압도적으로 높고, 판매처들은 A와 B 사이 혹은 B와 C 사이에 걸치는 사람에게 대체로 B를 권합니다. 세 칸을 만들어도 결국 가운데 칸이 시장을 대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허먼밀러는 2016년 리마스터 버전에서도 세 사이즈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ㅣ사이즈가 다른 의자, 어떻게 설계할까
사이즈를 키운다고 하면 대개 복사기의 확대 버튼 같은 그림을 떠올립니다. 기본형을 110%로 늘리면 큰 사이즈가 되고, 90%로 줄이면 작은 사이즈가 된다는 생각이지요. 기성복이 오랫동안 붙들었던 가정도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여성복 규격 또한 사이즈가 커지면 모든 부위가 같은 비율로 커진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다가 1983년 폐기되었습니다.
우리 몸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미국 성인 남성의 인체치수를 나란히 놓으면 거의 모든 항목에서 한국인이 작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앉은 팔꿈치 높이만은 뒤집힙니다. 한국 남성이 261mm, 미국 남성이 243mm. 서구 브랜드 의자에 앉았을 때 팔걸이가 유독 낮게 느껴진 적이 있다면 그 감각에는 근거가 있는 셈입니다. 대부분 작은데 한 군데만 크다면, 확대 버튼으로는 그 한 군데를 맞출 방법이 없습니다.
에어론의 공식 치수표를 펼쳐보면 사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A 사이즈와 B 사이즈의 차이, B 사이즈와 C 사이즈의 차이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좌판 깊이가 늘어나는 폭이 서로 다르고, 전체 너비처럼 두 사이즈가 아예 똑같은 항목도 있습니다. 한편, 좌판이 올라가는 높이의 상한은 A만 혼자 낮습니다. 허먼밀러의 설명에 따르면, 세 사이즈는 틸트 메커니즘과 베이스 크기까지 다릅니다. 등판을 젖혀주는 틸트도, 바닥을 지탱하는 베이스도 다르다면, 그건 한 의자의 세 가지 배리에이션이라기보다 세 대의 다른 의자에 가깝지 않을까요?
비슷한 사례를 게이밍 체어 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크릿랩 타이탄 Evo의 XL 사이즈는 버틸 수 있는 몸무게가 130kg에서 약 179kg으로 올라가면서 틸트와 중심봉, 휠베이스가 전부 보강된 부품으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런데 S 사이즈에는 일부러 더 짧게 다시 만든 중심봉가 들어갑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 발을 바닥에 평평하게 딛을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이지요. 작은 사이즈 역시 무작정 크기만 줄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크기를 하나 추가한다는 것은, 대개 가장 적게 팔릴 제품에 가장 많은 재설계를 들이기로 하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조절만으로 부족할 때 : 시디즈 T60 LARGE
의자를 조절해도 좌판이 좁거나 등판이 불편하다면? 필요한 것은 더 넓은 조절 범위뿐 아니라, 몸을 담는 크기 자체의 변화인지도 모릅니다. 시디즈가 T60 LARGE를 출시하는 이유지요. T60은 헤드레스트와 럼버서포트, 팔걸이 등 다축 조절이 가능한 제품이지만, 그것만으로 수용하기 어려웠던 체형을 고려해 전용 설계를 바탕으로 별도의 사이즈 옵션을 더했습니다.
어디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어디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등판 폭 24mm, 높이 약 30mm 확장. 등판을 키우면서 허리 지지점도 함께 높였습니다. 넓이뿐 아니라 몸을 받치는 위치까지 고려했지요.
좌판 폭 30mm, 깊이 15mm 확장. 엉덩이와 허벅지가 닿는 면적을 넓혀 체압이 고르게 분산되도록 했어요.
좌판 높이 조절 범위 20mm 확장. 무릎 각도와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정도를 체형에 맞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라지 사이즈가 필요할까?
라지 사이즈 적합도의 기준은 사용자의 키나 몸무게가 아닙니다. 기존 제품을 시착하며 좌판이나 등판이 좁게 느껴진다면 라지 사이즈를 함께 살펴 보세요. 바닥부터 무릎 뒤까지의 높이와 엉덩이 뒤부터 무릎 뒤까지의 길이도 측정해 보세요. 키가 같더라도 앉았을 때 적합한 의자의 크기는 체형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ㅣ사이즈 다양화의 전제는 무엇일까
의자 사이즈를 다양화하는 작업은 개인화의 완성이 아니라 최선의 타협점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사이즈를 개발하기 전 갖춰야 하는 전제가 있습니다. 측정값입니다. 한국은 1979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국민의 몸을 재왔고, 지금 제9차 한국인 인체치수조사가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진행 중입니다. 제8차 조사에서 한국인 평균 키는 남성 172.5cm, 여성 159.6cm로 집계되었는데, 1차 조사와 견주면 남성은 6.4cm, 여성은 5.3cm가 커진 수치이고 다리 길이 비율도 함께 늘었습니다. 40여 년 사이 몸이 커졌을 뿐 아니라 비례까지 달라진 것입니다.
인체치수조사의 데이터베이스에 의자가 필요로 하는 항목이 전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등판 높이를 결정하는 어깨뼈높이는 국내 조사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좌석 설계를 다룬 한 국내 연구는 이 칸을 비워두고 미국 수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무엇을 잴지 정하는 순간 무엇을 설계할 수 있는지도 함께 정해진다는 점에서, 측정은 설계보다 앞서는 일입니다.
조절 기능을 강화한 의자는 ‘사용자가 직접 조절해야’ 완성됩니다. 사이즈를 다양화한 의자는 ‘사용자가 자신의 몸을 알아야’ 정확하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키 번호에 맞춰 의자를 받았던 어린 시절 이후, 키와 몸무게를 제외한 자신의 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죠. 보다 편안한 앉음을 위하여 한번쯤 확인해봐야 할 숫자인지도 모릅니다.
FAQ
평균 체형에 맞춰 만든 의자는 왜 모두에게 맞지 않을까요?
사람의 몸은 모든 부위가 같은 비율로 크거나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키는 평균이어도 다리가 길거나 앉은키가 클 수 있어, 여러 신체 치수의 평균값을 조합한 ‘평균적인 몸’은 실제 누구의 몸과도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조절 기능이 많은데도 의자를 여러 사이즈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높이와 각도는 조절할 수 있지만 좌판 깊이, 등판 높이, 프레임 구조처럼 조절만으로 바꾸기 어려운 요소도 있습니다. 여러 사이즈를 만들면 체형에 따라 좌판과 등판의 기본 위치를 다르게 설계해, 조절 범위 밖의 사용자까지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의자 사이즈는 키와 몸무게만으로 선택해도 될까요?
키와 몸무게는 대략적인 권장 범위를 정하는 기준일 뿐, 의자와 몸의 적합성을 전부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앉은오금높이, 앉은엉덩이오금수평길이, 앉은엉덩이너비, 앉은팔꿈치높이처럼 실제로 좌판과 팔걸이에 닿는 부위의 치수를 함께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의자를 고를 때 좌판 깊이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좌판이 너무 깊으면 무릎 뒤쪽이 눌려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이를 피하려 엉덩이를 앞으로 빼면서 허리와 등판 사이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럼버서포트가 제 위치에서 벗어나므로 좌판 깊이의 문제는 허리 지지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큰 사이즈 의자는 기본형을 비례대로 키운 제품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체 각 부위의 크기는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 않기 때문에 좌판과 등판 치수를 각각 다시 정해야 하며, 체중과 하중이 달라지면 틸트, 중심봉, 베이스와 내구성 기준까지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허먼 밀러 에어론은 왜 좌판 깊이 조절 대신 A·B·C 사이즈를 선택했나요?
에어론의 메시 소재인 펠리클은 단단한 프레임에 일정한 장력으로 걸려야 체중을 고르게 분산할 수 있습니다. 좌판을 앞뒤로 움직이면 프레임과 메시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어, 에어론은 좌판 깊이 조절 대신 서로 다른 프레임의 세 가지 사이즈를 택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의자를 크기별로 나누었나요?
한국은 1979년 국민 신체치수 조사를 바탕으로 의류와 책걸상 등에 호수제를 도입했습니다. 대부분의 호수제는 1990년 폐지됐지만 학생용 책걸상은 지금도 키에 따라 여러 호수로 구분됩니다.
두 사이즈의 경계에 걸린다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다리 길이가 짧다면 좌판 깊이를 기준으로 작은 쪽을, 엉덩이너비와 체격이 크다면 좌판 너비를 기준으로 큰 쪽을 우선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조사의 권장표만으로 결정하기보다 실제로 앉아 오금 압박, 발의 접지, 럼버서포트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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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의 공학적 메커니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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