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학자가 말하는 좋은 앉음

교육공학자가 말하는 좋은 앉음

교육공학자가 말하는 좋은 앉음

“오래 앉아 공부하는 게
무조건 좋을까요?
뇌는 ‘오래’가 아니라
‘잘’ 앉기를 원합니다.”

아이의 학습 성과는 집중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중력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신종호 교수에 따르면
아이의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의자입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아이와 의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짚어보았습니다.
신종호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육심리학자이자 교육공학자로, 인간의 인지 체계와 학습 동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배움의 본질’을 환기해왔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학교 학습과학연구소장으로서 뇌과학과 심리학을 접목한 미래형 교육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공부는 전략이다>, <읽는 아이가 미래를 지배한다> 등이 있으며, EBS 〈클래스 e〉,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 다수 방송에서 통찰력 있는 학습 멘토로서 대중과 소통해왔다.
  

“학습 성과가 떨어지는 아이, 의지가 부족해서일까요?”

대한민국 학부모와 수험생 사이에는 오래된 불문율이 하나 있습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는 믿음이지요. 책상 앞에 얼마나 오래 붙어 있는지가 곧 성실함의 척도이자 성적 향상의 보증수표로 여겨져 왔으니까요. 이러한 믿음을 증명하는 데이터도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청소년들이 의자에 앉아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0~11시간에 육박합니다. 이 시간은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최상위권에 해당하며, 성장기 아이들이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교육심리학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통계는 ‘성실함의 증거’가 아니라 ‘비효율의 경고’로 읽힙니다. 11시간의 앉음이 곧 학습 성과로 이어진다면 우리 아이들은 모두 천재로 성장했겠죠.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는가?’ 대신, ‘과연 뇌가 학습하기 좋은 상태로 앉아 있는가?’라고,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해봅시다.

학습은 뇌가 수행하는 고도의 인지 활동입니다. 그리고 뇌는 몸이라는 물리적 기반 위에 존재하지요. 불편한 의자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끙끙대며 버티는 동안, 아이의 뇌는 공부가 아닌 육체적 불편함과 싸우느라 지쳐버립니다. 이제 의자를 단순한 가구가 아닌, 아이의 집중력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학습 환경(Critical Learning Environment)으로 재정의할 때가 되었습니다.

ㅣ불편한 자세라는 ‘이중 과제’


우리는 흔히 집중력을 마음가짐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공부를 하다 산만해지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며 혼을 내죠. 하지만 교육심리학과 뇌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집중력은 정신력이 아닌 ‘에너지 배분’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뇌, 그 중에서도 고차원적 사고와 학습, 자기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인지부하이론(Cognitive Load Theory)에 따르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한정된 인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의자가 불편하여 아이가 나쁜 자세를 취하거나 허리에 통증을 느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이의 뇌에는 비상등이 켜집니다. 뇌는 학습이라는 주된 과제(Primary Task)를 수행하는 한편, 무너진 신체 밸런스를 잡고 통증 신호를 처리하는 부가적 과제(Secondary Task)까지 떠안게 되지요. 겉으로는 책상에 앉아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허리가 아파, 자세를 고쳐잡아”라는 신체 신호를 처리하느라 아이의 뇌는 분주해집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이를 ‘이중 과제 간섭(Dual-task Interference)’이라고 부릅니다. 학습에 온전히 쓰여야 할 인지 자원이 ‘자세 유지’라는 엉뚱한 목적에 소모되는 것이죠. 

신체 구조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에릭 페퍼(Erik Peper) 교수팀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구부정한 자세(Slumped posture)는 폐를 압박하여 호흡의 깊이를 얕게 만듭니다. 뇌는 우리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산소의 20%를 소비하는 ‘산소 대식가’입니다. 나쁜 자세로 인해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뇌는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죠. 결국 하품이 나오고 졸음이 쏟아지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결국 불편한 의자, 불편한 자세는 극심한 비효율로 이어집니다. 마치 배터리가 방전되어 가는 노트북으로 고사양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과 같죠. 소프트웨어, 즉 학습 의지가 훌륭해도 하드웨어로서 신체 상태가 이를 지원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퍼포먼스는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책상 앞에서 몸을 비틀거나 산만하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집중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자세가 너무 불편해 머리를 쓸 수 없어요”라는, 아이의 뇌가 보내는 구조신호일 가능성이 더 높지요.

ㅣ가장 밀접한 학습 환경, 의자


교육공학(Educational Technology)에서는 학습자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최적의 환경을 무척 중요하게 여깁니다. 흔히 '학습 환경'이라고 하면, 조명이나 소음, 최신 태블릿 PC 같은 디지털 기기를 떠올리기 쉽지요. 하지만 학습자의 신체와 가장 넓은 면적을 맞대고, 가장 오랜 시간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환경은 다름 아닌 의자입니다.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학습자와 책상 - 즉 학습 대상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Interface)인 셈입니다.
잘 설계된 인터페이스가 사용자의 경험을 향상시키듯,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는 학습 효율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킵니다. 텍사스 A&M 대학의 마크 벤든(Mark Benden)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인체공학적 책상과 의자를 도입한 교실에서 학생들의 ‘과제 집중 행동(On-task behavior)’이 유의미하게 증가했음이 보고된 바 있습니다. 몸이 편안해지자 산만함이 줄어들고, 수업에 몰입하는 비율이 자연스럽게 높아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좋은 의자’란 어떤 것이며, ‘좋은 앉음’은 또 무엇일까요? 허리를 90도로 세우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군인 같은 모습일까요? 오래 전 그렇게 꼿꼿한 자세를 칭찬하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간공학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가장 좋은 자세는 바로 ‘다음 자세(The next posture)’”라는 격언이 있듯,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장시간 고정된 자세는 근육의 긴장을 유발하고 혈류 속도를 느리게 합니다. 

결국 ‘최적의 환경’은 아이를 꼼짝 못 하게 가두는 의자가 아닙니다. 좋은 의자는 척추의 자연스러운 S자 곡선(요추 전만)을 단단하게 지지하는 한편, 공부하는 틈틈이 아이의 몸이 일으키는 미세한 움직임을 유연하게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최근 교육 현장에서 주목하는 ‘동적 착석(Dynamic Sitting)’의 개념입니다.

아이가 스트레칭을 하거나 앉은 자세를 조금씩 바꿀 때, 의자 등판은 그 움직임을 탄력 있게 받쳐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허용적 환경’에서 아이의 신체 피로도는 분산되고, 뇌는 다시금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신선한 에너지를 얻습니다.

ㅣ집중력의 파트너


초반의 문제의식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엉덩이 힘을 길러라”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나 ‘장기적 학습 지구력(Learning Endurance)’은 무작정 버티는 고통 속에서 길러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엉덩이 힘’은 불필요한 신체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환경, 뇌가 오롯이 지적 탐구에 몰입할 수 있는 의자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발현되는 것이죠.

부모와 교육자에게 권합니다. 아이의 자세를 지적하기에 앞서, 아이가 앉아 있는 환경을 먼저 점검하세요. 아이가 자꾸 몸을 비틀거나 눕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의자가 아이의 몸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니까요. “똑바로 좀 앉아!”라는 백 마디 잔소리보다 척추를 편안하게 감싸주는 의자 하나가 집중력을 북돋우는 데 더 효과적인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짧은 시간이라도 깊게 파고드는 몰입의 질입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닙니다. 의자는 아이의 신체 건강을 지키는 제2의 척추이자, 학습 효율을 극대화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전략적인 학습 파트너입니다.

“학습의 진정한 ‘엉덩이 힘’은 바로 좋은 앉음입니다.”

우리 아이의 책상 앞, 지금 어떤 파트너가 놓여 있나요? 아이가 오래 앉아 있기를 바라기보다, 부디 ‘잘’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랍니다. 그 ‘좋은 앉음’이 아이의 성장과 공부를 돕는 가장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References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4). 2023년 아동종합실태조사. 세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Benden, M. E., Blake, J. J., Wendel, M. L., & Huber, J. C. (2011). The impact of stand-biased desks on academic engagement: an exploratory study.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Promotion and Education, 49(3), 88-96.

Peper, E., & Lin, I. M. (2012). Increase or decrease depression: How body postures change your energy level. Biofeedback, 40(3), 125-130.

Sweller, J. (2011). Cognitive load theory. In J. P. Mestre & B. H. Ross (Eds.), The psychology of learning and motivation: Cognition in education (pp. 37–76). Elsevier Academic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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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교육 건축가의 공간에 대한 관점,
학습용 의자의 인간공학까지
의자와 앉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해갑니다.

시팅랩 시리즈의 [STUDY] 칼럼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연구자와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의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합니다.



Writer 신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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