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디자인하는 도구, 의자

마음을 디자인하는 도구, 의자

마음을 디자인하는 도구, 의자

“사회심리학자로서 저는
의자가 ‘앉는 도구’ 이상의
심리적 엔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의자를 그저 앉는 도구로 여기지만,
심리학에서 의자는 더 미묘하고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김영훈 교수가
역사적인 심리학 연구들을 중심으로
의자와 마음의 관계에 대하여 들려줍니다.
김영훈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문화와 사회가 마음에 남기는 자국을 연구한다. 미국 아이오와대 석사, 일리노이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를 받은 뒤 2012년부터 연세대에서 가르치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행동 속 심리의 구조를 읽어내는 데 관심이 많으며, <노력의 배신>,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 걸 그랬습니다> 등 대중서를 통해 학문의 언어를 삶의 감각으로 번역하는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의자는 심리적 엔진입니다."

의자는 늘 우리 일상 속에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일상의 ‘배경’ 속에 있습니다. 편하면 좋고, 디자인이 예쁘면 더 좋지요. 의자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그 정도에서 멈춥니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자로서 저는 의자가 ‘앉는 도구’ 이상의 심리적 엔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심리적 거리, 권력의 균형, 호감의 온도, 대화의 리듬, 심지어 성격 판단까지, 의자는 사회적 관계를 표상하거나 그에 영향을 끼치지요. 이 사실을 증명하는 사회심리학의 대표적 연구 3가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이 연구들에서 의자는 관계의 공간을 설계하거나 대화의 톤을 정합니다. 때로 우리의 마음을 미세하게 조율하기도 하고요. 의자는 결코 중립적인 사물이 아니며, 우리 마음의 상태와 ‘앉음’에는 깊은 상호작용이 존재합니다.

ㅣ첫 번째 실험 : ‘맞춰 앉음’이라는 힘


스탠퍼드 대학의 사회심리학자 티덴스Tiedens와 프라갈Fragale의 2003년 실험은 심리학의 고전적 연구들 중 하나입니다. 연구팀은 참가자에게 ‘그림 설명 실험을 하겠다’고 안내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지요. 그들의 실제 목적은 맞은 편에 앉은 조교의 자세에 따라 참가자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추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교는 때로 지배적 자세-다리를 넓게 벌리고 팔을 옆 의자에 걸쳐 공간을 크게 차지했고, 때로는 복종적 자세-두 다리와 팔을 모아 의자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듯 작게 앉았습니다. 조교와 참가자는 함께 앉아 그림을 보며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패턴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조교가 지배적 자세를 취하면 참가자는 점차 몸을 오므렸습니다. 반대로 복종적 자세 앞에서는 참가자가 몸을 넓게 펼쳐 앉았죠. 두 사람의 몸은 보이지 않는 계산을 수행하듯, 서로의 공간 점유에 맞춰 ‘상보적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참가자들의 심리 상태였습니다. 상반된 자세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때, 사람들은 상대와의 상호작용을 더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느꼈습니다. 우리는 흔히 대상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미러링’이 친밀감의 핵심이라 생각하지만, 실험 결과는 그 반대였습니다. 관계 속 균형과 안정감을 만드는 힘은 모방이 아니라 바로 ‘맞춰 앉음(compensatory sitting)’이었지요. 

티덴스와 프라갈의 발견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앉음의 자세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의자는 사람들 사이 ‘거리’를 결정하는 물리적 도구일 뿐 아니라, 누가 공간을 넓게 쓰고 또 누가 그에 맞춰 물러나는지를 미묘하게 설계하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회의실을 떠올려 보세요. 참석자 중 하나가 테이블 위로 팔을 넓게 뻗으면 다른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의자 끝을 향해 몸을 이동시키곤 하죠. 누가 자세를 바꿨는지, 얼마나 움직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앉음과 앉음 사이의 상보적 조화, 심리적 리듬 맞추기, 서로의 공간을 미세하게 조정하여 균형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의 긴장이 풀리고 관계가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핵심이지요.

이 원리는 우리의 생활과 업무에 적용해볼 수도 있습니다. 첫 만남에서 상대의 자세를 따라하기보다, 상대가 차지하는 신체적 공간을 살핀 뒤 ‘한 박자 다른’ 상보적 자세를 취하는 게 더 편안하고 열린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들도 상담이나 팀 회의에서 자주 떠올리는 원칙이죠. 예를 들어 부부 상담을 진행할 때 상담사들은 의자를 무작정 가까이 혹은 멀리 두지 않습니다. 내담자의 자세와 공간 사용을 관찰한 후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앉는 것이 신뢰를 높이고 긴장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듯 우리가 의자에 앉는 방식은 타인에게 보내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깊은 신호가 됩니다.

| 두 번째 실험 : 의자의 거리는 마음의 거리


면접장은 다양한 심리적 기술과 전략이 오가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사실 면접의 대화는 질문이나 인사가 아니라 의자의 움직임으로 시작됩니다. 호감이 가는 지원자가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의자를 살짝 앞으로 끌어 당기거든요. 이 동작은 정말 기민하고 부드러워서, 거의 자동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워드, 재나, 쿠퍼Word, Zanna & Cooper가 1974년 수행했던 실험은 이 무의식적 ‘의자 이동’이 면접의 전체적 흐름을 어떻게 바꾸는지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실험에 참여한 면접관들은 호감형 지원자 앞에서 평균 148cm까지 거리를 좁혔고, 비호감이라고 판단한 지원자와는 약 158cm의 더 먼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이 10cm의 간격은 면접관들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의자가 가까워지면 몸도 앞으로 기울었고, 끄덕임과 미소의 횟수가 증가했으며, 후속 질문도 더 자주 나왔습니다. 지원자들 또한 그 미묘한 차이를 즉각 감지했지요. 면접관에게 가까이 앉은 지원자들은 한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의자 사이의 거리에 비례라도 하듯, 결국엔 면접 시간에도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의 면접은 평균 12분 46초 동안 지속되었지만, 거리가 멀었던 경우에는 평균 9분 25초에 그쳤죠. 면접관의 의자 위치는 지원자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리거나’ ‘위축시키는’ 심리적 출발 신호였던 셈입니다.

워드, 재나, 쿠퍼의 실험에서 의자는 면접이라는 심리적 장면을 설계하는 장치였습니다. 면접관이 의자를  앞으로 당기는 행동은 곧 말 없는 초대, ‘나는 당신에게 열려 있습니다’라는 신호입니다. 이 미세한 거리 조정만으로도 지원자는 긴장을 풀고 자신의 능력을 더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자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지원자는 본능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더 조심스럽고 수동적으로 반응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에요. 누군가 무심코 의자를  움직이는 순간, 그때 의자가 가까이 다가온 거리, 이런 것들이 면접의 톤을 결정하는 것이죠.

누군가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다면, 의자를 조금 가까이 두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셈입니다. 상담이나 멘토링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내담자가 긴장하거나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면, 상담자는 의자를 살짝 앞으로 당기곤 합니다. 그 행동만으로도 상대가 훨씬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죠. 반대로 갈등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가 압박감을 줄 수 있으므로, 의자를 한 뼘 정도 뒤로 물려 긴장이 완화되고 대화의 감정이 부드러워지도록 조치합니다. 

ㅣ세 번째 실험 : 앉음의 감촉이 마음을 설계한다


의자를 사용한 심리학 연구 중 예일대 심리학 교수 존 바그John Bargh의 2010년 실험은 특히 유명합니다. 연구팀은 별다른 설명 없이 참가자들을 의자에 앉혔습니다. 절반은 쿠션 없는 단단한 나무 의자에, 나머지 절반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패브릭 의자에 앉았지요. 그 후 참가자들에게는 직장인의 성격 프로필을 읽고 평가하거나 자동차 가격을 흥정하는 협상 등 특정한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놀랍게도, 딱딱한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프로필을 읽고 더 고집스럽고 냉정하며 융퉁성 없는 성격으로 판단했지요. 협상 과제 결과는 더 분명했습니다. 나무 의자 위에서 사람들은 처음 제안한 가격을 고집하며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유지하는’ 단단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반면 패브릭 의자 그룹에서는 상황을 고려하며 제안을 폭넓게 조정하는 등 유연한 협상이 이뤄졌지요. 신체가 느끼는 ‘단단함(hardness)’이 마음의 ‘경직성(rigidity)’으로, 부드러움은 유연함으로 번역된 것입니다. 이 실험에서 의자의 소재는 우리의 인지와 판단, 사회적 태도까지 조율합니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의자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상황과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지 상상해 보세요. 사람들은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오늘따라 내가 왜 이렇게 융퉁성이 없지?’ 의아해할 수 있지만, 하필 그날 앉은 의자의 촉감이 그 배경에 있었다면 어떨까요? 단단한 의자는 우리 몸과 자세를 긴장시킬 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톤앤매너를 ‘딱딱하게’ 만드는 것이죠. 만약 협상이나 갈등 조율을 앞두고 양쪽이 모두 단단한 의자에 앉아 있다면, 대화의 분위기는 이미 ‘타협하기 어려운 구조’로 얼마간 설정된 셈입니다. 그럴 땐 패브릭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의자를 선택하는 게 더 좋겠죠. 우리의 마음도 좀 더 느슨하고 유연하며 상대를 향해 개방될 테니까요. 

상담실에서 내담자 의자로 패브릭을 곧잘 선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차가운 가죽이나 딱딱한 나무보다 패브릭 의자가 이야기의 흐름을 열어주죠. 데이트, 부부 사이의 갈등, 가족 회의, 연봉 협상, 의견 조율 회의…. 이 원칙을 유념하면 좋을 자리는 다양합니다. 의자의 쿠션감 하나가 서로의 양보 가능성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지요. 우리가 앉는 표면-의자의 감각은 대화의 분위기를 음향처럼 조율하며, 사회적 관계의 개방성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앉는 방식이 곧 관계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의자를 둘러싼 실험들을 따라가다 보면, 앉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자세가 아니라 하나의 관계적 선택이라는 사실에 닿게 됩니다. 의자는 늘 배경처럼 보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기를 조용히 편집하죠. 회의에서 더 열리고 싶을 때, 갈등을 누그러뜨리고 싶을 때, 중요한 대화를 앞두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싶을 때-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의자를 옮기고, 각도를 조절합니다. 의자의 감촉과 온도에 자동적으로 반응하기도 하지요. 앉는 방식이 곧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이 어디에, 어떻게 닿아 있는지가 우리 마음에 얼마나 결정적으로 작용하는지 깨닫는 순간, 일상의 의자는 전혀 다른 표정을 갖기 시작할 것입니다.



References

Ackerman, J. M., Nocera, C. C., & Bargh, J. A. (2010).
Incidental haptic sensations influence social judgments and decision-making. Science.

Tiedens, L. Z., & Fragale, A. R. (2003). Power moves: Complementarity in dominant and submissive nonverbal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Word, C. O., Zanna, M. P., & Cooper, J. (1974). The nonverbal mediation of self-fulfilling prophecies in interracial interaction.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사용자의 질문에서 시작하는
앉음의 탐구 SITTING LAB​​

시팅랩은 앉음의 의미와 방법을 모색하는
시디즈의 콘텐츠 시리즈입니다.
사용자의 경험과 질문에서 시작해
디자인 심리학자의 경험과 관점,
의자 메커니즘에 대한 작은 백과사전까지
의자와 앉음의 세계를 깊이 탐구해갑니다.

시팅랩 시리즈의 [STUDY] 칼럼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연구자와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의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합니다.



Writer 김영훈 Illustrator 이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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